지하철 보관함에 탯줄 붙은 그대로 버려진 아이가 외진 골목으로 흘러들어온다. 아이는 조직에서 자라나며 보스의 눈에 든다. 청년이 된 아이는 문득 다른 세상에 눈을 뜨고 어쩔 수 없이 배신의 길로 들어선다.
줄거리만 봐서는 홍콩 누아르가 떠오르는, 별다를 것 없는 장르 영화다.
그러나 버려진 아이는 충무로의 신데렐라 김고은, 경계심인지 뿌듯함인지 알 수 없는 시선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조직의 보스는 충무로 대표 여배우 김혜수다.
같은 옷이라도 누가 걸치느냐에 따라 달라지듯, 정형화된 두 인물은 관객에게 호감도 높은 두 배우의 몸을 거치며 특별해졌다.
'차이나타운'으로 장편 영화 연출에 데뷔한 한준희 감독은 두 배우를 어떻게 써야할지 부분에 가장 영민하게 대응했다.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쉴새없이 스크린에서 종횡무진하는 김고은은 화장기 하나 없는 맑은 얼굴로 청춘을 뜨겁게 불사르는 모습으로 그려낸다.
선한 인상의 미모를 가졌기에 여성성을 내려놓는 도전에 더욱 목말랐을 김혜수는 뱃살 두둑한 차이나타운의 대모로 바꿔놓되, 그 이미지를 남용하지 않고 결정적인 순간의 히든카드로 꺼내 든다.
전개상 개연성이나 현실감이 떨어지는 헐거운 부분도 눈에 띄지만, 충무로의 꽃 같은 여배우들에게 '변신'이란 수식어를 달아주기 위한 것이 아닌, 온전히 살아있는 인물을 만들어낼 무대를 내줬다는 점만으로도 희귀성이 있는 영화다.
차이나타운의 범죄 조직을 김혜수를 '엄마'로 내세운 '이상한 모계 가족'으로 연출한 것도 자칫 작위적이 될 수 있는 장르 영화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만든 좋은 선택이다.
큰아들 역할의 우곤(엄태구), 지능 낮은 막내 홍주(조현철), 사고뭉치 딸 쏭(이수경), 일영을 차이나타운에 팔아넘긴 도박꾼 삼촌 탁(조복래) 등 조연 식구들은 적재적소에 배치돼 과하거나 모자람이 없다.
이 영화는 올해 칸 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받았다.
29일 개봉. 110분. 청소년 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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