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 심사를 눈앞에 둔 강력반장 최창식(손현주)은 회식 후 괴한에게 납치를 당하고 자신에게 달려드는 괴한을 죽이고 만다.
최창식은 흔적을 지우고 현장을 떠나지만, 이튿날 버려뒀던 시신이 경찰서 바로 앞 공사장 크레인에 매달린 채 나타난다.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이 사건은 그에게 떨어진다.
'악의 연대기'는 궁지에 몰린 형사의 심리를 좇는 스릴러다. 관객에게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겠는가"라고 직접적으로 묻지만, 관객으로서도 마땅한 답을 내놓기 어려운 상황이 스릴러로서의 재미를 돋운다.
최창식이라는 인물은 현실적이다. 한때 순수한 열정을 가졌을 그에게는 알게 모르게 조금씩 쌓인 세월의 때가 묻어 있다. 그러나 집에서는 사랑하는 아들을 둔 가장이며 생사를 함께하는 후배들에 대한 정도 깊다.
영화 초반 최창식이 후배 형사에게 '나눠 쓰라'고 내미는 기업 상품권 봉투는 그가 지닌 세월의 때인 동시에 애틋한 동료애를 상징한다.
차분하고 섬세한 연출과 손현주라는 좋은 배우의 연기 덕에 관객이 주인공 최창식에게 감정을 이입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현실적인 인물로 재빨리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영화는 이를 붙잡고 차근차근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이 부분이 '악의 연대기'의 큰 장점이다.
이야기가 꽤나 빠르게 전개됨에도 영화는 숨을 헐떡이지 않는다. 대단한 트릭 없이 오로지 최창식의 심리로써 한발씩 한발씩 내딛는다.
그러나 영화가 후반부에서 심리 스릴러에서 반전 스릴러로 반전을 시도하면서 숨결이 흩어진다. 분명히 개연성 있는 반전임에도 숨을 너무 고른 탓인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남는다.
'악의 연대기'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이 영화는 머리를 쓰는 스릴러가 아니라 감정을 담은 스릴러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가장 밑바닥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감정은 슬픔이다. 반전 장면의 아쉬움에도 이 슬픔의 감정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꽤 긴 여운을 남긴다.
'튜브'(2003) 이후 오랜 공백기를 거쳐 붓과 메가폰을 동시에 잡은 백운학 감독의 연출은 신중하면서도 감각적이다.
1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1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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