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사는 정철에게는 일한 만큼 받고 받은 만큼 먹고 사는 일조차 쉽지 않다.
가진 자들이 더 가지려고 못 가진 자의 바닥까지 긁어내는 세상에서 정철과 누나 수연, 조카 하나, 친구 명훈 모두 살기 위해 발버둥 친다.
이 영화를 쓰고 만들고 연기한 박정범은 12일 CGV 왕십리에서 열린 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에서 "산다는 게 뭔지 잘 모르지만, 한 번쯤 만들어보고 싶었던 영화"라고 했다.
그는 "나의 행복 위해 남의 행복 빼앗는 게 나의 행복을 찾아주지는 않는다"며 "내 집을 짓기 위해 남의 문짝을 떼면 안 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한겨울 강원도에서 촬영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박 감독은 "자본가가 하는 일의 희생은 노동자가 하고 이익은 자본가가 가져간다"며 "그 과정을 노동자는 모른다. 분노하지 않는 것이 얼어붙은 강원도의 땅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박 감독은 2011년 탈북자의 삶을 다룬 장편 데뷔작 '무산일기'로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대상, 샌프란시스코 국제영화제 신인감독상 등 세계 영화제에서 17개 상을 쓸어담은 '괴물 신인'이었다.
두 번째 장편인 '산다'는 작년 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 삼인삼색' 프로그램의 지원으로 만들어져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청년비평가상, 싱가포르 국제영화제 특별언급상 등 많은 상을 그에게 안겼다.
4년 만의 새 장편을 내놓은 소감으로 박 감독은 "정상적이지 않은 가족의 이야기인데 이 안에 나오는 모든 인물이 나의 일부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의 공포, 유년 시절의 이야기, 공장에서의 경험, 그 모든 것을 통해 쓰러져가는 것을 생각하고 그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는 영화가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 영화의 상영시간은 2시간 45분이다. 작년 전주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됐을 때만 하더라도 3시간 30여 분이었다가 일부 장면을 걷어낸 것인데도 그렇다.
박 감독은 "과유불급이 아닌가 생각한 적도 있었다"며 "그럼에도 꼭 하고 싶은 이야기였고, 나중에 4시간 반짜리 버전을 편집해 보고 싶은 희망도 있다"고 말했다.
'무산일기'에 이어 그는 연기에도 직접 나섰다.
정신이 불안정한 누나 수연 역의 배우 이수연은 "감독님이 힘든 장면을 다른 배우에게 시키기 미안해했다"며 "몸을 아끼지 않아야 하는 부분을 그래서 직접 한 것 같다"고 했다.
박 감독은 "연기하는 것, 촬영하는 것 모두 내게는 하나의 덩어리였다"며 "농사짓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정철이 일하는 된장공장 사장 역에는 박 감독의 아버지인 박영덕 씨가 나섰다. 박영덕 씨는 전작 '무산일기'에도 출연한 바 있다.
박 감독은 "아버지가 실제로 된장 공장을 하셔서 그 일을 잘 안다"며 "영화 때문에 공장 옆에 집도 지어야 했는데 아버지와 함께 고생하며 지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버지가 출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긴 시간 동안 삶의 절망을 사실적으로 그려내지만 끝내 희망만은 잃지 않는다.
박 감독은 "스스로 잘못한 것을 깨닫는 일은 기적이라고 생각한다"는 짧고도 강렬한 메시지를 전했다.
이 영화는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이며 오는 21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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