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시선'은 1965년 9월 30일 인도네시아 군사 쿠데타 이후 공산주의자로 몰려 군부를 돕는 마을의 행동대원들에 의해 입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잔혹한 방식으로 살해당한 청년 람리의 동생 아디가 가해자들을 찾아가 대면하는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군부는 반대파와 그 싹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재판을 통한 '처벌'이 아니라 마을 민병대를 통해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리는 '실종'을 택했고, 영화는 그 가해자와 피해자를 한 스크린에 올린다.

이 영화를 만든 미국 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41)는 대학살의 가해자를 하나씩 집요하게 추적하는 영화 '액트 오브 킬링'(2012)에서 나아가 현재까지 이어진 피해자 가족의 고통을 담는 데 집중했다.

촬영은 유족이 가해자를 직접 찾아가 왜, 어떻게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묻는 도전적이고 도발적인 방식으로 이뤄졌다.

아디가 가해자들에게 자신이 람리의 동생임을 밝히기 전후로 스크린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책임을 회피하는 가해자들의 모습과 망연자실한 아디의 표정이 교차될 때는 보는 이의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영화가 주목하는 부분은 그 참혹한 과거가 과거에 그치지 않고 현재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형 람리가 숨진 후 태어난 아디는 부모에게는 죽은 아들이 다시 태어난 듯한 존재였으며 아디는 평생 상처에서 회복하지 못한 채 회한을 안고 사는 부모의 밑에서 부담감을 안고 살아왔다.

이 영화의 국내 개봉을 기념해 한국을 찾은 오펜하이머 감독은 26일 오후 메가박스 동대문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누구도 과거로부터 달아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그는 "윌리엄 포크너의 말대로 우리는 곧 우리의 과거이고, 과거는 현재의 우리를 따라잡게 돼 있다"며 "영화란 관객에게 경험을 만들어주는 것이며 가해자와 함께 살아야 하는 유족의 마음을 관객에게 경험으로 제공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영화에는 제3세계를 찾은 서양인의 시선은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오로지 아디의 눈을 통해 인도네시아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려 한다.

오펜하이머 감독은 "미국인이 인도네시아로 건너가 그들의 일을 바로잡으려 한 게 아니며 아디의 형이 나의 형제, 아디의 부모가 나의 부모처럼 느껴지게 하고 싶었다"고 소개했다.

영화는 인도네시아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으나, 잘못된 과거가 청산되지 않은 채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는 과거를 직시하고 성찰해야 한다는 주제의식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통할 만큼 보편적이다.

이 영화는 작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비롯한 5개상을 석권했다.

전작 '액트 오브 킬링'은 작년 인도네시아에서 극장 개봉이 금지됐으나 공동체 상영과 온라인 무료 상영을 통해 30만명이 관람했다. 감독은 '침묵의 시선'도 비슷한 방식으로 곧 상영을 시작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9월 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103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