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에서 제약회사 법무팀으로 이직하기로 한 변호사 고동호(손현주)가 로펌 동료들과의 회식을 위해 아내 연수(엄지원)와 만나기로 한 약속을 깬 날, 아내가 집에 침입한 강도에게 살해당한다.
1년이 지나도록 동호는 연수를 살해한 범인을 찾아다니지만, 잡을 수 없다. 그에게 연수의 번호로 전화가 걸려온다.
처음에는 악의에 찬 장난인 줄 알았지만,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연수가 맞다. 동호는 연수가 말하는 현재가 딱 1년 전 오늘, 이 시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영화 '더 폰'(감독 김봉주)에는 이겨내야 할 기시감 두 가지가 있다.
'숨바꼭질', '악의 연대기'에 이어 세 차례 연속 스릴러 영화에 출연한 배우 손현주의 눈빛이 전체 분위기를 지배하는 영화 포스터에 따른 낯익은 느낌이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 문제'가 평행이론과 결합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동시에 진행된다는 설정도 드라마 '나인:아홉 번의 시간여행'을 비롯해 여러 작품에서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더 폰'은 이런 두 가지 데자뷰를 스스로 힘으로 이겨낸다.
'또' 스릴러에 출연한 손현주는 자신이 왜 이런 역할에 가장 적격인지 이유를 다시금 입증한다. 자신이 순간의 실수로 놓쳐버린 가족을 향한 가장의 후회와 절박함을 과장없이 표현하는 동시에 현실성을 높인 '아날로그 액션'의 느낌도 제대로 살렸다.
여기에 외유내강의 아내 캐릭터를 딱 떨어지게 해낸 엄지원, 바라보기만 해도 섬뜩한 악인의 모습부터 벼랑 끝에 몰려 넋이 나간 가장의 모습까지 두루 소화한 배성우 등 다른 배우들의 뒷받침으로 영화는 손현주의 전작들과 차별성을 확보한다.
이에 더해 시선이 가는 부분은 시차를 가로지르는 통화의 혼선이라는 설정을 처리하는 방식이다.
영화는 판타지를 관객에게 현실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하려고 과욕을 부리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 이 비현실적인 상황에는 스쳐 지나가는 듯한 뉴스 몇 마디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부연 설명이 없다.
그 대신 영화는 비극을 되돌려보려 애쓰는 가장과 희생자 역할에만 머물지 않는 아내, 일찌감치 공개된 범인의 쫓고 쫓기는 스릴감 자체에 집중한다.
많은 등장인물의 배치와 사건 전개의 속도감이 적절하고 청계천을 비롯한 도심과 주택가라는 액션 장면들의 현실적인 무대도 장점으로 작용한다.
신선함과 독창성에 대한 기대감만 버린다면, '더 폰'은 각본, 연출, 연기의 삼박자가 무난하게 어우러진, 꽤 괜찮은 오락영화다.
이 영화는 김봉주 감독에게는 장편 연출 데뷔작이다.
115분. 2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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