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택시 조수석에서 본 이란 테헤란 거리의 모습으로 시작해 역시 택시 조수석에서 본 '알리의 샘'의 장면으로 끝난다.
영화 상영 내내 카메라의 시점은 택시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란의 진보적인 영화감독 자파르 파나히가 자신을 옥죄는 굴레에도 영화에 대한 애정과 영화찍기에 대한 고집을 고스란히 보여준 '택시'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택시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거쳐 지나가는 공간이다. 택시에 탄 손님들이 풀어놓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란 사회의 현실을 알게 된다.
타이어를 훔쳐간 절도범을 사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노상강도와 사형한다고 범죄가 줄어들지 않는다며 그의 논리를 반박하는 여교사.
교통사고로 죽을 위기에 놓였지만 유언을 남기지 않으면 재산이 아내에게 상속되지 않는다며 휴대전화로라도 유언을 촬영하려는 남편, 그 남편이 응급실에 실려가는 상황에서 유언이 담긴 영상을 먼저 챙기려는 아내.
배구 경기를 관람하려 했다는 이유로 수감된 한 여성(곤체 가바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인권 변호사.
감독은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유머와 애정을 갖고 들려준다.
이 영화는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선상의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감독이 직접 출연하고, 감독의 초등학생 조카와 이란의 인권 변호사 나스린 소투데도 실명으로 나온다. 출연자들은 카메라의 존재를 대놓고 의식한다.
하지만 이는 모두 픽션으로, 감독이 쓴 시나리오에 따라 감독 자신과 지인들이 연기한 장면들이다.
감독이 다큐의 형식으로 극영화를 촬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에게 부과된 형벌 때문이었다.
파나히 감독은 부정선거 논란이 제기된 선거로 당선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퇴진 시위과정을 영화로 만드는 과정에서 체포돼 20년간 영화연출과 시나리오 집필 금지, 해외 출국 금지, 언론과의 인터뷰 금지를 당했다.
어떻게 영화를 제작할 수 있을까 고민 중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함께 탄 승객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다가 '택시 운전기사가 돼 승객들의 이야기를 담는다면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감독이 택시 운전기사가 돼 휴대전화로 몰래 승객들을 촬영했으나 승객이 그를 알아보고 카메라를 꺼주기를 원해 이 아이디어는 좌절됐다. 또 영화가 제작돼 상영되면 원치 않게 출연한 승객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도 고려됐다.
결국 감독이 선택한 대안은 픽션을 다큐의 형태로 찍는 것이었다. 계기판 옆 티슈 통에 초소형 카메라를 설치하고 선루프를 조명 삼아 감독 본인과 지인들을 출연시켜 영화 '택시'를 제작했다.
그는 "나는 영화감독이다. 영화를 연출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내가 믿는 것들을 존중하고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 어떤 상황에 처하든 영화제작을 계속 해나가야만 한다"고 말했다.
영화 '택시'는 올해 열린 제65회 베를린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인 '황금곰상'을 받았다.
11월 5일 개봉. 전체 관람가. 8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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