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베일, 케이트 블란쳇, 나탈리 포트먼. 이들 배우가 출연한 영화라면 할리우드 상업영화를 떠올릴 수 있지만 감독이 테렌스 맬릭이라면 그런 상상은 금물이다.

'영상 철학자'로 불리는 테렌스 맬릭의 7번째 장편영화 '나이트 오브 컵스'는 일반 관객들이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작품이다.

감독 자신이 미국 MIT 철학 교수 출신답게 이 영화는 형이상학적 주제를 기존의 영화 문법을 탈피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영화는 성공한 작가 '릭'(크리스천 베일)이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들려 준 왕자 이야기, 동생의 자살에 따른 충격, 각종 파티에서 여자들과 방탕한 생활, 이혼한 아내 '낸시'(케이트 블란쳇)와 연인 '엘리자베스'(나탈리 포트만) 사이에서 방황한다.

이런 파편화된 이야기들이 어느 한 소실점으로 수렴하지 않고 모자이크처럼 뒤섞여 어떤 하나의 '인상'만을 어렴풋하게 보여줄 뿐이다.

이는 감독 특유의 연출 방식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영화에서 감독은 배우들에게 가이드라인과 몇 페이지 분량의 아이디어만 주고서 배우가 스스로 캐릭터를 연기하도록 했다고 한다. 또 고프로(액션캠)를 배우에게 쥐여줘 배우가 촬영한 영상을 영화에 사용하기도 했다.

영화에서 관객이 인지할 수 있는, 유일하다시피한 이야기 뼈대는 타로카드이다.

이 영화는 달, 교수형에 처한 남자, 은둔자, 심판, 탑, 태양, 고위 여사제, 죽음, 자유 등 타로카드로 장이 구분된다.

영화 제목 '나이트 오브 컵스', 컵을 든 기사 역시 타로카드의 하나다. 정신적인 가치관, 진실된 자신의 모습 등을 의미한다.

'씬 레드 라인'(1999년), '트리 오브 라이프'(2011년)에 감명을 받은 관객이라면 볼만한 영화다.

12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118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