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발매된 가수 루시드폴 정규 7집 '누군가를 위한,'은 형태가 사뭇 특이하다.
파란색의 단단한 표지를 열면 CD 대신 가수가 쓴 두툼한 분량의 동화가 펼쳐진다. 동화를 다 읽고 나면 뒤표지에 붙은 종이봉투 안에 CD가 들어 있다. 가수 스스로 "CD가 끼워진 책인지, 책이 끼워진 CD인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다.
게다가 한정판에는 가수가 제주도에서 직접 재배한 귤 1㎏과 사진엽서가 얹어졌다.
루시드폴은 종합선물세트 같은 이 앨범이 만들어진 건 "앨범은 2년간의 기록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규 앨범이 저에게는 하나의 기록이거든요. 이전 앨범을 내고 2년간 생활한 것을 담을 수 있다면 다 담고 싶었어요. 동화를 먼저 썼고, 동화에 맞는 곡을 만들어 CD에 넣었죠. 작년부터 귤 농사를 하게 돼서 키웠던 귤을 같이 담았어요. 말하자면 한 뮤지션이 만들어낸 '창작물 모음집'이죠."
7집은 지난해 제주도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한 그의 '제주도 라이프'가 집약된 음반이다. CD에 붙은 동화 '푸른 연꽃'의 배경은 전부 그의 집 주변 풍경이고, 앨범 수록곡 15곡 가운데 5곡은 이 동화의 주요 장면에 걸맞은 OST(오리지널사운드트랙)다.
싱글 위주 음원 시장에서 정규 앨범을, 그것도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음반을 낸 것은 "더 재미있게 살 수 있는" 앨범을 만들겠다는 그의 의지 때문이다.
"간직할 가치가 있는 앨범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어요. 듣는 분들이 '음원 사이트에서 들으면 되지, 왜 앨범을 사야 해?' 하고 생각하실 수도 있잖아요. 꼭 CD여야 할 필요는 없지만, 디지털로만 존재하는 음반은 허무하게 느껴져요. 누군가가 내 음반을 책장 구석에 꽂아놓든, 중고시장에서 거래하든 만질 수 있는 형태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최근 화제가 된 '홈쇼핑' 방송은 어찌하다 보니 이렇게 부피가 커진 앨범을 어떻게 전달할까 고민하다 아이디어가 나왔다. 루시드폴은 지난 11일 새벽, 소속사 대표인 유희열과 CJ오쇼핑에 출연해 7집과 귤 1㎏, 사진엽서를 담은 한정판 패키지 1천 세트를 2만9천900원에 판매해 화제가 된바 있다.
루시드폴은 "희열이 형이 '너 이번에 방송 활동 안 할 거잖아, 홈쇼핑에서 진하게 한 번 하고 끝내!'라고 하더라"면서 "농담으로 시작했는데 결국 진짜가 됐다. 소속사 직원들이 다 제주로 내려가서 귤을 땄는데, 또 하겠다고 하면 쫓겨날지 모른다"고 웃었다.
루시드폴이 방송에서 쓴 귤 모양 탈은 그가 평소 보여준 점잖은 모습과 대비돼 더욱 파격적이었다. 그는 "제 이미지가 망가질 것은 전혀 고민 안 했지만, 저의 진정성이 잘 전달되지 않거나 팬들이 싫어할까 봐 걱정됐다"고 털어놨다. 걱정과 달리 1천 세트는 9분 만에 완판됐다.
7집 타이틀곡 '아직, 있다'는 그의 미성과 어쿠스틱 기타가 촉촉하게 어우러진 노래다.
'친구들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축 처진 어깨를 하고/ 교실에 있을까 // 따뜻한 집으로/ 나 대신 돌아가 줘/ 돌아가는 길에/ 하늘만 한 번 봐줘'란 가사는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그는 "제 노래나 동화는 듣는 분이나 읽는 분이 보시는 대로 느끼시는 게 맞다"며 "뭐가 동기가 돼서 썼는지는 얘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루시드폴은 "앨범을 계속 듣다 보니 제 목소리가 지루했다"고 할 만큼 자신의 가창력을 말할 땐 유독 겸손하다.
하지만 "저의 장점은 아직도 음악이 너무 좋다는 점"이라며 "저를 잘 모르시는 분에게는 이 앨범이 그저 큰 거부감 없이 언제나 들을 수 있는 음악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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