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휠체어 농구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개척자였던 「휠체어 농구 1세대」 임찬규 전 코웨이 단장이 지난 2일 향년 60세로 영면에 들었다. 경기도 남양주에서 눈을 감은 고인의 별세 소식은 그의 불꽃 같았던 삶을 기억하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슬픔과 함께 그의 족적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충남 천안 출생으로 3살 때 소아마비를 앓으며 역경을 딛고 일어선 그의 인생은 대한민국 장애인 스포츠의 역사 그 자체였다.
고인은 1986년 휠체어 농구 선수로 활약을 시작하며 일찌감치 코트를 지배했다. 특히 1988 서울 패럴림픽 당시,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인식이 일천했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국가대표 주전으로 나서 조직위를 향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던 용기 있는 스포츠인이었다. 그는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모욕감에 앞서 장애자올림픽 조직위마저도 장애자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 대해 분노를 느낀다'고 일갈하며 장애인 권익 향상에 앞장섰다. 대전 충무팀 소속으로 빛나는 활약을 이어갔던 고인은 2000 시드니 패럴림픽에서도 국가대표 주전으로 출전, 세계 무대에서 기량을 뽐냈다. 한 경기 최다 69점, 최다 3점 슛 9골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은 물론, 월드 베스트 5차례 선정이라는 탁월한 업적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야말로 휠체어 농구계의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선수 은퇴 후에도 고인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장애인체육회(2007년부터 2019년까지),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 조직위 국장, 2019년 서울시장애인체육회 사무처장 등 폭넓은 행정가 활동을 통해 대한민국 장애인 스포츠 발전에 헌신했다. 특히 2019년에는 만년 2위에 머물던 서울시청 휠체어농구단을 진두지휘하여 팀을 정상으로 이끌며 뛰어난 리더십을 입증했다. 이어서 2022년부터 올해 1월 말 정년퇴직까지 코웨이 블루휠스 농구단의 초대 단장을 맡아 4년간 국내 유일의 민간 기업 휠체어 농구단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고인은 올해 1월 말 정년퇴직 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나이를 먹어도 도전은 계속된다'는 신념으로 당구 선수라는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휠체어 농구 코트를 넘어 당구대 위에서 제2의 인생을 준비하던 중 갑작스럽게 맞은 그의 별세 소식은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불굴의 의지와 도전 정신으로 평생을 살아온 임찬규 전 단장. 그의 삶은 단순한 스포츠인의 일생을 넘어, 차별과 편견에 맞서 싸우며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개척했던 위대한 영웅의 서사였다. 고인이 남긴 족적과 후대에 미칠 영감은 우리 사회에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