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는 우연히 발생한다고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 사고가 일어나기까지 있었던 여러 일 중에 어느 하나만 다른 방향으로 진행됐다면 과연 그 사고는 발생했을까.
여러 우연이 누적돼 사고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사고는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빔 벤더스가 7년 만에 내놓은 극영화 '에브리띵 윌 비 파인'(Everything will be fine)에서 토마스(제임스 프랑코)와 케이트(살롯 갱스부르)에게 닥친 불행한 사고가 그렇다.
토마스가 낚시터 동료에게 담배를 받지 않았더라면, 라이터가 주머니에 있어 차 안이 아닌 바닷가에서 담배를 피웠더라면, 그의 여자친구 사라(레이첼 맥아담스)로부터 다시 걸려온 전화를 처음에 받았더라면 그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필 그날 읽었던 소설에 푹 빠진 케이트가 자녀를 오후 늦게까지 밖에서 썰매를 타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면, 사라가 토마스에게 '그런 이야기를 전화통화로 할 수 없다'라고 끊었다가 다시 전화를 걸지 않았다면, 집으로 가는 길에 공사가 없어 토마스가 다른 길로 우회하지 않았더라면 그 사고는 세상에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고는 발생했다. 전도유망한 작가 토마스는 차를 운전하고 가던 중 비극적인 사고를 경험한다.
그 사고로 아이의 어머니 케이트와 오빠 크리스토퍼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고, 토마스는 깊은 죄책감에 빠져든다.
영화는 이 우연한 사고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12년에 걸쳐 보여주고 있다.
토마스는 한때 정서적으로 '밑바닥'까지 내려간다. 자살까지 시도했으나 점차 회복한다. 그의 소설이 이전보다 나아졌다는 평가를 받으며 훌륭한 작가로 거듭난다. 편집자의 극중 대사처럼 작가에게는 그런 경험도 작품의 자양분이 된 셈이다.
반면 케이트는 자식을 잃은 깊은 슬픔을 종교의 힘으로 극복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의 시도가 성공했는지는 미지수다.
사고를 목격한 크리스토퍼는 상당히 혼란스러운 감정에 휩싸인다. 커가면서 소위 문제아동이 된다.
빔 벤더스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에브리띵 윌 비 파인'은 실제 경험을 이용해 작품을 만든 창작자들의 죄책감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영화는 이 질문을 직접적으로 던지지 않는다. 크리스토퍼의 한 대사에서 이 내용을 가볍게 언급할 뿐이다.
영화는 12년에 걸쳐 벌어진 일들을 부분, 부분만 보여주고 있어 관객들은 인물들의 달라진 인간관계, 처한 상황과 심리 상태를 극의 흐름을 쫓아가며 해석해야 한다.
토마스 역을 맡은 제임스 프랑코는 "이 영화의 좋은 점은 단 한 가지의 답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로 그게 중요한 거군'이라고 말할 만한 부분이 정말 없다. 과정 속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뒤집으면 관객들이 이 영화에 다가가기가 쉽지가 않다는 의미다.
빔 벤더스 감독이 '팔레르모 슈팅' 이후 7년 만에 선보인 극영화이지만 '불친절'한 영화다.
하지만 빔 벤더스 팬들에게 이번 연말에 때아닌 빔 벤더스 '특수'가 벌어져 좋은 일이다.
그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 재개봉 중이고, 그가 제작에 참여한 '라스트 탱고'가 개봉을 앞둔 데 이어 그가 연출한 극영화인 이 작품까지 관객들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118분. 12세 이상 관람가. 3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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