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세상을 떠난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정보기술(IT)업계를 뛰어넘는 명실상부한 혁신의 아이콘이었다.
그는 잘 짜인 이야기 구성, 간단하고 시각적인 슬라이드, 단순한 듯 고도로 계산된 연출과 보디랭귀지를 통해 완벽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영화 '스티브 잡스'는 잡스가 생전에 보여줬던 세 번의 프레젠테이션의 무대 뒤를 배경으로 했다.
1984년 매킨토시 론칭, 1988년 넥스트 큐브 론칭, 1998년 아이맥 론칭 등 3막으로 나뉘어 프레젠테이션 시작 전 각 40분 동안 잡스와 그 주변인들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16㎜ 카메라로 촬영한 1막은 타협 없는 완벽주의와 광기를 지닌, 동거녀와의 사이에서 나온 딸의 존재까지 부정하는 냉혹한 성격의 잡스를 미화 없이 묘사했다.
IT 업계의 신화에 가려진 흠 많은 인간으로서의 잡스의 모습도 고스란히 담겼다.
그가 아주 사소한 일까지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주변인들과의 갈등과 충돌은 빠른 박자로 몰입감 있게 그려진다.
잡스가 자신을 해고한 애플에 복수하려고 만든 넥스트 큐브의 론칭을 다룬 2막은 35㎜ 카메라로 촬영됐다.
1985년 잡스가 자신의 회사인 애플에서 쫓겨나는 과정과, 둘도 없는 동업자였던 존 스컬리(제프 대니얼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세스 로건)의 대립이 교차하면서 잡스의 업무 철학과 독불장군식 카리스마가 한껏 부각된다.
아이맥 론칭을 담은 3막은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됐다. 우리가 친숙하게 느끼는 터틀넥과 청바지 차림을 한 잡스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가 자신의 천재적인 열정과 광기 뒤에 자리한 인간적인 한계와 외로움과 마주하고 모종의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잡스가 딸에게 먼저 다가가 해묵은 갈등과 오해를 풀고 환호 속에 오르는 프레젠테이션 무대는 진한 감동과 여운을 준다.
독재자 스타일의 잡스를 따뜻하고 인간적으로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전 매킨토시 마케팅 이사 조애나 호프먼(케이트 윈즐릿)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슬럼독 밀리어네어'(2008)를 연출했던 대니 보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는 연극 무대로 연출을 시작한 보일 감독의 경력이 말해주듯이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한 몰입감과 현장감이 특징이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를 다룬 영화 '소셜 네트워크'로 아카데미 각색상을 받은 애런 소킨이 각본을 썼다. 일반적인 시나리오 분량의 두 배인 200페이지짜리 각본이다.
잡스를 연기한 마이클 패스벤더의 연기는 한 치의 빈틈도, 오차도 보이지 않는다.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현재 유력한 남우주연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앞서 애슈턴 커처가 주연한 영화 '잡스'(2013)는 잡스의 성공과 실패를 평탄하고 밋밋하게 그려 비평과 흥행에서 모두 실패한 바 있다.
혁신적인 영감을 통해 인류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직관적으로 변화시켰지만, 다른 이들과 소통에 문제가 많았던 잡스의 내면에 오롯이 집중한 점이 전작과는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그렇기에 관객은 잡스가 혁신과 변화를 이끌어내는 과정을 또 다른 관점에서 새롭게 보고, 그 내면의 직접적인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다.
1월 21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1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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