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영화계의 '오래된 미래'인 작품이 드디어 국내에서 개봉된다.
세계적인 거장 감독인 베르나르도 베트톨루치가 29세에 연출한 '순응자'(1970)가 46년 만에서 국내에서도 스크린을 통해 만나볼 수 있게 됐다.
'순응자'는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한 남자가 파시스트 비밀경찰이 돼 테러를 감행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이탈리아 로마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마르첼로(장 루이 트린티냥)는 어린 시절 아픈 기억이 적지 않다.
그는 자신을 성폭행하려 했던 운전기사를 총으로 쏴 죽인 적이 있다. 파시스트인 그의 아버지가 반대편의 사람들을 몽둥이로 때리고 이들에게 피마자기름을 먹이는 고문을 하는 것을 봐야 했다.
피마자기름은 향이 역겹고 설사를 일으켜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이 고문할 때 주로 사용해 이탈리아 파시스트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어른이 된 마르첼로가 중산층의 여성과 결혼하고 파시스트 비밀경찰이 되고자 한 이유는 지극히 소박하다. 그 시대에 '순응'해 평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다.
그의 행동은 파시스트들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그를 파시스트 비밀경찰로 영입하는 한 대령은 "파시스트에 협력하는 것은 두려움이거나 돈 때문이지. 파시스트에 확신을 가진 이들은 드물지. 그런데 자네는 이들 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지"라며 의아해할 정도다.
마르첼로는 그가 원하는 비밀경찰이 돼 대학교 당시 자신의 스승이자 프랑스에 망명 중인 반파시스트 인사인 콰드리 교수(엔조 타라스치오)를 암살하러 떠난다.
하지만 막상 콰드리 교수의 집에 갔을 때 만난 그의 젊은 부인 안나 콰드리(도미니크 산다)에 연정을 품게 되고 그의 결심은 흔들리게 된다.
과연 그는 임무를 완수하고 평범한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인가.
'순응자'는 세계 영화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손꼽힌다. 세계 100대 영화를 선정할 때 그 안에 포함되는 것은 물론이고 많은 거장이 자신에게 영향을 준 영화로 '순응자'를 꼽는 경우가 적지 않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순응자'는 내게 모더니즘을 잉태케 했다"고 밝히고,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은 "'순응자'의 베르톨루치는 내게 경외의 대상이자 질투의 대상이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코엔 형제는 새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 언제나 스태프들과 함께 '순응자'를 챙겨보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국내에서는 박찬욱 감독이 '순응자'의 열성적인 팬으로, '복수는 나의 것'이라는 영화에서 '순응자'에 나온 콰드로 교수의 살해 장면을 차용해 이 작품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낸 바 있다.
하지만 '순응자'는 결코 접근하기 쉬운 영화가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이전 파시스트가 지배한 이탈리아에 대한 정치·사회적 상황에 대한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
일부 대사는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동굴의 우상' 관련 구절이나 로마제국의 14대 황제의 시를 인용하고 있어 그 맥락을 알아야 대사의 의미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이야기의 구조는 마르첼로가 호텔에서 나와 차를 타고 안나를 쫓아가는 현재와 마르첼로의 과거 이야기가 특별한 구분 없이 교차해 흐름을 따라가기도 어렵다.
그러나 '순응자'를 다 관람하고 그 내용과 형식을 곱씹어봤을 때 많은 감독들이 왜 '순응자'에 경외심을 표현했는지, '순응자'가 후대의 영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아쉽게도 '순응자'를 볼 수 있는 영화관은 현재로써 아트하우스 모모, 아트나인(이상 서울), 영화의 전당(부산), 영화공간 주안(인천) 등 4곳뿐이다.
이 영화를 수입·배급한 영화사 백두대간은 '순응자'를 시작으로 국내에서 개봉되지 않았거나 재개봉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고전 영화를 순차로 상영할 계획이다.
2월에는 비토리오 데시카의 '핀치 콘티니의 정원'(1970), 3∼4월에는 프랑수와 트뤼포의 '쥘 앤 짐'(1962), '400번의 구타'(1959), 5∼6월에는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세 가지 색' 시리즈인 '블루'(1993), '레드'(1994), '화이트'(1994)와 '베로니카의 이중생활'(1991)이 각각 선보인다.
111분. 청소년관람불가. 2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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