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하고 잔혹하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구축한 영화를 선보여 왔던 소노 시온 감독이 달라졌다. 사랑과 평화를 노래한다. 물론 그의 예측불허의 황당한 극 전개는 여전하다.
'러브 앤 피스'의 주인공은 33세의 스즈키 료이치(하세가와 히노키)다. 한때 록 가수였으나 현재는 '찌질한' 회사원이다.
21세에 록그룹을 결성해 콘서트를 세 차례 열었으나 팬들로부터 외면받았다. 이후 록 가수의 길을 포기하고 악기 부품회사에 취직했다.
매사 소심하고 위축된 표정의 료이치는 회사에서 동료와 상사한테 놀림을 받는다.
언제나 그렇듯 사무실에서 비웃음과 빈정거림에 시달린 뒤 밖에서 한숨을 돌리고 있을 때 조그마한 애완용 거북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그 거북을 사서 '피카몬'이라고 이름 붙이고 애지중지 기른다. 피카몬은 곧 그의 유일한 친구가 됐다.
어느 날 피카몬을 회사로 가지고 갔다가 또 놀림을 받은 료이치는 피카몬을 화장실 변기에 버린다.
코믹한 분위기였던 영화는 이때부터 판타지로 바뀐다. 하수구를 떠돌던 피카몬은 '수수께끼 노인'(니시다 토시유키)이 관장하는 '잡동사니 천국'에 다다른다. 버려진 인형과 장난감, 애완동물이 새 삶을 사는 곳이다.
노인은 인간처럼 말할 수 있게 '말하는 사탕'을 피카몬에게 주려다가 실수로 '소원을 들어주는 사탕'을 먹인다.
이후 료이치에게는 좋은 일만 생긴다. 주인 료이치를 좋아하는 피카몬이 료이치가 잘 되기를 속으로 빌자 사탕의 힘 덕분에 그의 소원이 실현된 것.
료이치는 무엇인가 홀리듯 피카몬을 그리워하는 노래를 작사·작곡하고 우연한 계기로 길거리에서 불렀다가 대형 기획사에 스카우트된다.
그의 노래는 큰 성공을 거두고 그는 단숨에 반골정신으로 무장한 저항가수로 부상한다.
피카몬은 원래 과거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별칭으로, '뻔쩍'이라는 뜻의 피카리토에서 유래된 말이다.
피카몬이 료이치의 애완 거북의 이름인 줄 모르는 대중에게 그의 노래는 반전 노래로 받아들여졌다. 실제 곡으로 취입될 때엔 피카몬 대신 '러브 앤 피스'라는 단어로 대체됐다.
료이치는 록 가수로서 승승장구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소원을 들어주는 사탕'은 먹은 이의 소원을 들어주는 대신 소원의 수가 많아질수록 먹은 이의 몸집이 불어나게 돼서다.
료이치가 성공하면 할수록 피카몬의 몸집은 걷잡을 수 없게 커지면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게 된다.
'러브 앤 피스'는 소노 시온이 그간 보여준 작품과 상당히 다르다. 전작인 '리얼 술래잡기'만 보더라도 영화 초반 수학여행을 떠난 여고생들이 무더기로 몸뚱이가 두 동강 나는 장면이 나온다. 또 짧은 교복 치마를 입은 여고생들이 시시각각 팬티를 노출하는 장면도 적지 않게 나온다.
하지만 '러브 앤 피스'는 어떤 잔혹함도 어떤 선정성도 없다. 그가 20대에 완성한 시나리오를 30년이 지나 영화로 제작한 것이라고 하니 소노 시온도 젊은 시절에는 꽤 순수한 면모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개봉한 그의 작품 중 유일하게 12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중학생도 볼 수 있는,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별종 작품이다.
28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1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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