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으로의 여행이 주는 즐거움은 상당 부분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에 따른 해방감에서 비롯된다.
자신을 둘러싼 여러 인간관계가 주는 책임감이나 부담감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 자신에 집중할 수 있는 시공간이 여행일 것이다.
영화 '남과 여'는 그런 낯선 곳에서 만난 남과 여가 오랜만에 자신을 '남자'와 '여자'로 느끼고 나눴던 감정을 일상에까지 어떻게 이어가는지를 그리고 있다.
잘 나가는 디자이너 가게 대표인 상민(전도연)은 아들을 국제학교 캠프에 데려다 주러 핀란드에 갔다가 한 남자를 만난다. 그 남자는 아내, 딸과 함께 핀란드에서 근무 중인 건축가 기홍(공유).
둘은 같이 캠프장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숲 속 오두막에 잠시 머물게 된다. 관계가 시작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된 셈이다.
관계를 촉발시킬 불씨는 둘 사이의 공통점이다. 상민의 아들과 기홍의 딸 모두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 겉보기에는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지만 한발짝 들어가면 고단한 인생이다.
온통 하얀 눈밖에 없는, 보는 이 하나 없는 둘만의 공간에서 이들은 깊은 관계를 맺는다. 짧지만 강렬한 관계를 맺은 이들은 서로의 이름도 모른 채 헤어진다. 그리고 8개월 후 서울에서 둘은 다시 만난다.
상민은 자신의 가게 앞에서 서성대는 기홍에게 물어본다. "우연 아니죠?" 기홍은 답한다. "반반이죠."
기홍은 상민의 주변을 맴돌고 상민은 자신의 일상을 헤집고 들어오는 기홍에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빠져든다.
둘의 관계는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 상민은 기홍에게 "늘 그렇게 애매하게 말하냐고" 지적한다. 기홍의 성격과 함께 결말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영화는 소재가 불륜이지만 자극적이지도 않고 신파에 빠지지도 않으면서 두 남녀가 느끼는 감정을 시종일관 진지하게 보여준다. 두 남녀가 어떤 감정에서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곱씹어보게 하는 진지함이 있다.
요즘 국내 영화계에서 보기 드문 정통 멜로영화다.
주연을 맡은 공유는 이를 두고 "남자 영화 위주의 극장가에서 멜로라는 장르를 찾아보기 어려운데, '남과 여'는 그런 아쉬움을 채워준다"라며 "가슴이 아련한 영화"라고 말했다.
영화 마지막에 영화 '과거가 없는 남자'(2002)로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핀란드 배우 카티 오우티넨이 역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자인 전도연과 '투 쇼트'로 나오는 장면은 흥미롭다.
25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1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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