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아카데미 시상식이 '백인만의 잔치'라는 오명 속에 몸살을 앓고 있다. 2년 연속 남녀 주·조연상 후보 20명이 전부 백인 배우들로 채워지면서다.
이에 아카데미상을 주관하는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이하 아카데미)가 개혁의 칼을 빼들었지만, 아카데미의 체질 개선은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지난 26일(현지시간) 전했다.
아카데미 측은 지난달 '오스카는 백인중심적'(OscarSoWhite)란 해시태그가 재등장하고 인종차별 논란이 들끓자 '아카데미 개혁안'을 발표했다.
셰릴 분 아이작스 아카데미 회장 명의의 이메일로 공개된 개혁안은 아카데미 회원 가운데 여성과 소수계 비율을 2020년까지 2배 이상 늘리고 회원 투표권도 10년으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혁안이 발표되면서 인종차별 논란이 다소 수그러들었지만, 현재 아카데미 조직 구성과 내용을 고려하면 숱한 난관 속에 좌초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2012년 투표권을 가진 아카데미 회원 6천261명을 분석한 결과 회원 중 백인 비율이 94%였으며 흑인 비율은 2%에 불과했다.
또 남성 회원 비율이 77%를 차지했으며 회원 평균 연령은 62세로 조사했다.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작과 수상자가 60대 이상 백인 남성들의 결정에 달려있다는 얘기가 된다.
4년 후인 2016년 투표권을 가진 아카데미 회원 중 백인은 91%, 흑인은 3%로 나타났다. 아시아인과 히스패닉은 각각 2%였다. 남성 회원은 76%로 여전히 백인 남성이 헤게모니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아카데미 개혁안이 현실화되려면 해마다 여성 회원 375명 이상, 유색인종 130명 이상이 각각 충원돼야 한다고 신문은 전했다.
아카데미는 올해 신입 회원 322명을 초청하면서 과거 어느 때보다 인종다양성을 존중했다고 홍보했지만, 명단을 열어보니 대부분이 백인 남성이었다.
더욱이 아카데미 내 제작자·배우·감독 등 17개 분과의 인원 분포를 보면 인종다양성을 구현할 수 없는 구조다. 영화 선택과 투자를 하는 제작자 분과의 경우 백인이 98%를 차지하고 있다.
홍보와 작가 분과에서는 백인이 95%, 영화 편집·프로듀서 분과에서는 백인이 94%에 이른다. 시각효과와 촬영 분과에서는 남성이 각각 98%, 95%를 차지하고 있다.
호크 코흐 전 아카데미 회장은 "아카데미 개혁안은 현실적으로 달성될 수 없을 것"이라며 "아카데미의 엄격한 회원 입회 방식과 할리우드에서 여성과 소수계 분포를 보면 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코흐 전 회장의 장담처럼 할리우드 산업계에서 종사하는 여성과 유색인종 비율이 워낙 미미하다보니 아카데미 신입 회원으로 여성과 유색인종 발탁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아넨버그 커뮤니케이션·저널리즘 대학원은 최근 조사를 통해 할리우드 영화 제작·배급사에서의 인종다양성은 '위기 수준'이라고 밝혔다.
조사에 따르면 영화감독 가운데 97%가 남성이고, 87%가 백인이다. 영화 제작·배급사 임원 가운데 여성 비율은 21%에 불과한 실정이다.
게다가 아카데미 개혁안 중에서 나이가 많고 활동이 저조한 회원들을 교체하고 투표권 행사도 10년으로 제한하기로 한다는 내용은 기득권층에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일부 기성회원들은 인종차별과 연령차별을 맞바꾼 독소조항이라고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에 영화감독 겸 배우 제니퍼 워런은 "아카데미는 백인 남성들의 전유물"이라며 "아카데미는 최소한 문제점이 뭔지를 알아야 하며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역대 아카데미 수상자 명단을 보면 아카데미가 유색인종에 인색하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흑인 배우는 4명에 불과하다. 시드니 포이티어가 1964년에 '들백합'(1963)으로 처음 받은데 이어 38년이 지난 2002년에 덴젤 워싱턴이 '트레이닝 데이'(2001)로 수상했다.
이후 2005년 제이미 폭스가 '레이'로, 2007년 포레스트 휘태커가 '라스트 킹'이 수상했다. 여우주연상은 2002년 '몬스터볼'의 할리 베리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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