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재심'은 알려졌다시피 지난 2000년 전북 익산 약촌 오거리에서 발생한 택시기사 살인 사건을 모티프로 했다. 이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10년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최모씨와 그의 법정 대리인 박준영 변호사 이야기를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재구성했다. 배우 정우가 속물이었다가 진실을 찾기 위해 나서는 변호사 준영을, 강하늘이 억울한 누명으로 고생한 현우를 연기했다.
'재심'은 감동보다는 영화 속에 표현된 공권력의 부패와 무능, 안일한 태도 등 우리 사회이기에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 분노를 유발하게 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조폭처럼 피의자를 구타하고 거짓자백을 강요하는 형사, 자기 출세를 위해 잘못된 것을 알고서도 그대로 사건을 진행한 검사는 황당무계를 넘어 치를 떨게 한다. "법이라는 게 사람 보호하라고 만든 것"임에도 일부 부정한 법의 집행자와 법의 허점 때문에 피해를 보는 이도 있다는 게 답답하고 무섭다.
10년을 복역하고 나온 현우는 근로복지공단이 택시기사 유족에게 건넨 보상금 4000만원에, 불어난 이자까지 총 1억7000만원에 대한 구상권 청구 소송을 당한다. 신도시 아파트 집단대출 사기 사건을 해결해 스포트라이트 받고 스카우트 되려 했으나 보기 좋게 패소 당한 준영은 친구 창환(이동휘)의 로펌에 빌붙으려 했다가 지방 무료법률 서비스 담당이 되고 현우의 사건을 맡게 된다. 정의보다 돈과 이익을 더 중요시하던 속물 변호사는 열혈 변호사가 돼 현우를 돕는 데 힘을 쏟는다.
아무리 실화라지만 갑자기 변하는 변호사가 그리 설득력 있게 그려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우는 멋내지 않은 연기력으로 관객의 의심을 상쇄한다. 정우와 강하늘, 현우의 엄마로 나오는 김해숙, 현우를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한 비리경찰 역의 한재영 등이 신들린 듯한 연기를 했기에 튀는 부분도 없다. 이들의 열연에 손뼉을 쳐야 할 것 같다.
당뇨로 눈이 먼 엄마와 현우가 좋아했던 다방 여종업원, 절대 경찰 같지 않은 망나니 형사, 준영의 정의로운 모습을 더 강조하게 된 동료 변호사 창환(창환 캐릭터는 관객이 이해하기에 설명이 다소 부족한 면이 없잖다) 등 영화의 드라마적인 부분과 휴머니즘을 강조하는 각각의 허구적 상상력들도 이 작품을 매력적으로 만들어냈다.
다만 후반부 설정은 영화적으로 과한 장치를 삽입했기에 몰입도가 떨어진다고 느끼는 관객도 있을 것 같다. 실화 소재 영화의 장점이 사그라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김태윤 감독은 "이 사건의 범인으로 몰렸던 최군을 만났을 때 내게 울면서 형사와 검사, 판사에게 해코지하고 싶다는 부분에서 영감을 얻어 영화적으로 설정했다"고 분명한 허구적 상상력임을 강조했다. 상황을 극대화했다는 말이지만 너무 과하게 표현됐기에 현실감이 없어진 인상을 준다.
관객의 공분과 공감을 샀던 '도가니' '변호인' '부러진 화살' 등과 비교하며 홍보되고 있으나 김 감독은 "'재심'은 사회고발 영화가 아니다. 극영화가 사회 고발 기능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며 "휴머니즘 영화에 가깝게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무거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지만 영화적 재미와 공감을 사는 데 나쁘지 않은 작품이다.
실제 '약촌 오거리 사건'의 범인으로 몰렸던 최씨는 지난해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 현재 다른 사람이 잡혀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는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 119분. 15세 이상 관람가. 16일 개봉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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