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권력, 미모의 젊은 약혼녀까지. 모든 것을 다 가진 중년 남자가 있다. 그런 그에게 인생 최대 위기가 닥친다.
사랑하는 약혼녀가 어느 날 숨진 채 발견되고, 설상가상으로 전처와 사이에서 나은 딸이 살인범으로 몰린다. 만취한 딸은 그날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모든 정황 증거는 딸에게 불리하기만 하다. '돈이 곧 진실'이라고 믿는 남자는 돈과 권력을 동원해 딸의 무죄를 입증하려 든다.
영화 '침묵'은 제목처럼 요란하지는 않다. 대신 긴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법정드라마, 범죄수사극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인물의 감정선을 세밀하게 그려내 기존 장르와 차별성을 띤다.
살해된 약혼녀, 용의자가 된 딸, 변호사와 검사의 법정 공방, 그리고 목격자, 제3의 인물까지 얽히면서 진실게임이 펼쳐진다.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까지는 아니지만, 사건을 추리하는 재미를 놓치지 않았다. 숨은 퍼즐이 많은 데다, 입체적인 캐릭터 덕분에 끝날 때까지 흡인력을 잃지 않는다.
이 영화는 최민식의 연기에 상당 부분 기댄다. 최민식은 좀처럼 속내를 알 수 없으면서도 복잡다단한 감정을 지닌 임태산을 능숙하게 연기한다. 딸에게 불리한 증거도 돈이 된다면 가차 없이 이용하는 냉혈한으로 그려지지만, 그의 진심은 나중에야 드러난다. 마지막 그의 서늘한 눈빛에서는 오랜 시간 다져진 연기 내공이 저절로 느껴진다.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갖는 것 역시 최민식의 힘이다. 최민식은 "임태산이라는 인물은 냉혹하리만큼 무자비하게 성공을 위해 질주하는 남자지만, 나중에 '돈은 허상이었구나'를 느끼게 된다"고 설명했다.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도 좋은 편이다. 그중에서도 임태산의 약혼녀를 연기한 이하늬는 짧은 분량이지만 자신의 매력을 온전히 보여준다. 직접 재즈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눈길을 뗄 수 없을 정도다.
살인사건 용의자이자 임태산의 철부지 딸 역을 연기한 이수경, 살인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류준열, 변호사 역의 박신혜도 제몫을 해낸다. 다만, 최민식에게 무게중심이 쏠린 탓인지 나머지 배우들의 존재감은 뒤로 갈수록 옅어지는 편이다.
'해피엔드' '은교' '4등'을 연출한 정지우 감독은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사실이라고 믿지만 그것이 사실일 수는 있어도 진실은 아닐 수도 있다"면서 "이 영화를 통해 사실과 진실이라는 문제를 다루고 싶었다"고 연출 취지를 밝혔다.
정 감독은 또 "임태산 역할을 하는 최민식의 속마음은 어둡고 시커멓게 보이기도 하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데, 그의 마음을 짐작하며 따라가다 보면 영화를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고 소개했다. 11월2일 개봉.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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