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링 위를 주름잡던 전직 복서 조하(이병헌). 지금은 낮에 전단을 돌리고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밤에는 만화방서 쪽잠을 자는 신세다.
중학교 때 집 나간 엄마와 십수 년 만에 우연히 만난 조하는 잠시 무료 숙식을 해결할 요량으로 엄마 집에 갔다가 난생처음 보는 동생 진태와 마주한다.
진태(박정민)는 서번트 증후군(자폐증)을 앓고 있지만, 피아노에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다. 형제는 엄마가 부산에 있는 식당에 일을 하려 한 달간 집을 비우면서 불편한 동거를 시작한다.
오는 17일 개봉하는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은 줄거리만 놓고 보면 뻔하디뻔한 이야기다. 처음엔 남보다 못했던 형제가 점차 우애를 쌓아가는 내용은 더스틴 호프만·톰 크루즈 주연의 명작 '레인 맨'(1988)부터 조정석·도경수가 호흡을 맞춘 '형'(2016) 까지 그동안 수많은 영화에서 자주 등장해왔던 소재다.
'그것만이 내 세상'도 비슷한 소재 영화의 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형제가 티격태격하는 과정에서 웃음을 유발하다가, 막판 큰 감동을 선물로 안기는 착한 코미디 영화 공식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예측 가능한 전개로 흘러가는데도, 관객을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슬픔과 감동을 강요하지 않는 담담한 연출과 이병헌·박정민·윤여정 등 배우들이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준 덕분이다.
이병헌의 연기는 명불허전이다. '내부자들'의 조폭, '마스터' 속 희대의 사기꾼, '싱글라이더'의 평범한 가장, '남한산성'의 최명길 등 출연작마다 전작의 이미지를 지워온 이병헌은 이번에도 '조하' 그 자체로 변신했다.
겉으로는 강한 척하지만, 엄마에 대한 깊은 원망과 사랑, 장애가 있는 동생에 대한 연민까지 복합적인 내면 연기를 펼쳤다. 눈빛 하나로 감정을 표현하는 등 힘을 뺀 담백한 연기가 더 큰 울림을 준다. 여기에 생활 연기, 코믹 연기까지 더해 그 어떤 연기도 다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박정민의 내공 역시 만만치 않다. 이준익 감독의 '동주'(2016)로 차세대 연기파 배우로 떠오른 그는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피아노 천재라는, 베테랑 배우도 쉽지 않은 배역을 훌륭히 소화해냈다.
그가 보여준 수준급 피아노 연주 실력은 컴퓨터그래픽(CG)이나 대역이 아니다. 이 영화를 찍기 전까지 피아노를 쳐본 적이 없다는 그는 6개월간의 피나는 노력 끝에 모든 연주 장면을 직접 연기했다. 영화 속 음악은 그가 직접 친 것은 아니지만, 음악과 그의 손놀림, 표정은 완벽하게 하나로 어우러진다.
오케스트라와 협주 장면에서는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다. 그에 맞춰 울려 퍼지는 클래식 선율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공연장 한가운데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피아노를 칠 때 진태가 짓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는 객석을 감동으로 물들인다.
형제를 따뜻한 사랑으로 이어주는 윤여정의 연기도 두말할 것 없다.
그렇게 각자 결핍을 지닌 세 사람이 서로를 보듬으며 하나의 가족으로 거듭나는 이야기는 상투적이지만, 그래도 감동적이다.
'역린'(2014)의 각본을 쓴 최성현 감독의 데뷔작이다. 쇼팽, 차이콥스키 등 클래식부터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 등 다양한 음악도 귀를 즐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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