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의 스물두 번째 장편영화이자 김민희와 함께 작업한 다섯 번째 영화 '풀잎들'이 지난 16일 공개됐다.
영화 무대는 종로 한 카페와 황태구이 집이 전부다. 평소 인사동 일대를 즐겨 찾는 홍 감독이 눈여겨본 장소인 듯하다.
커피집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골목 안에 커피집이 있고, 그 앞에는 건너편 슈퍼 아줌마가 심어 놓은 야채의 새싹이 고무대야 안에서 자란다.
누구도 찾지 않을 것 같은 커피집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여기저기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막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배우 '홍수'(안재홍 분)와 그의 친구 '미나'(공민정 분)는 죽은 친구 승희를 떠올리며 대화를 나누다 언성을 높인다.
노년의 배우 '창수'(기주봉 분)는 오랜만에 만난 후배 '성화'(서영화)에게 빈방에 얹혀살 수 없겠느냐고 부탁하지만, 성화는 죄송하다면서도 딱 부러지게 거절한다.
영화 시나리오를 집필 중인 배우 '경수'(정진영 분)는 작가 '지영'(김새벽 분)에게 함께 지내며 글 작업을 해보자고 청하지만 역시 거절당한다.
그리고 커피집 한구석에 앉은 '아름'(김민희 분)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들을 지켜보며 한 글자씩 관찰일기를 작성한다.
이번 작 역시 전형적인 '홍상수 표' 영화다. 영화 대부분이 장면 전환 없이 이어지는 '롱테이크 샷'으로 구성됐다. 영화 초반 '홍수'와 '미나'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6분가량 이어진다.
홍상수 영화에서 빠지지 않는 술자리와 젊은 여자에게 집적대는 늙은 남자 역시 어김없이 등장한다.
연인 김민희를 묘사하는 방식도 전작들과 다소 차이가 있다. '클레어의 카메라'에서 김민희에게 밀착했다면 이번 작에서는 다소 거리를 두고 그를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여전히 김민희는 홍 감독 대변자다. 홍 감독은 자신의 경험을 영화에 적극적으로 투영해 왔으며, 때로는 자기 성찰을 넘어서 자아비판과 조롱까지도 담아냈다. 이번 작에서도 아름의 대사를 통해 본인의 생각과 가치관, 고뇌를 녹여냈다.
결혼을 꿈꾸는 자기 동생과 그 연인에게 내뱉는 아름의 독설이 그 예다.
"결혼하려면 서로 잘 알아야지. 잘 모르면서 결혼하는 건 무책임한 거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엉망으로 사니. 사랑은 개뿔."
홍 감독과 김민희가 처한 상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대사다.
그런가 하면 아름은 홍수와 미나 대화를 엿들으며 '죄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 다시 당당하게 설 수 있을까'라고 읊조린다.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독백이다.
2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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