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한살 보리네 집 아침은 평범하다. 자명종 소리에 깬 보리가 거실로 나가면 밤에 배를 타고 나가 고기를 잡느라 피곤한 아빠가 강아지와 함께 자고 있다. 아빠 옆에 가서 눕는 보리를 따라 남동생 정우도 잠에서 깨 그 옆에 눕는다. 엄마는 가족들의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아침 밥상 앞에 피는 가족들의 웃음꽃까지 다른 가정과 크게 다를 것이 없지만, 조금 조용하다. 엄마, 아빠 그리고 남동생은 모두 농인이기 때문이다.
가족 중 유일하게 소리를 듣고 말할 수 있는 보리는 짜장면을 시킬 때, 물건을 살 때 등 가족이 세상과 소통을 해야 할 때 늘 가족의 목소리가 된다. 단오장에 갔다가 가족과 떨어져 길을 잃어도 보리가 먼저 가족을 찾는다. 두 세계를 오가던 보리는 문득 가족 내에서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낀다.
오는 21일 개봉하는 영화 '나는 보리'는 코다(CODA, 농인 부모를 둔 자녀)인 소녀 보리의 이야기다. 수어로 소통하는 가족들 사이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보리는 가족과 같아지고 싶은 마음에 '소리를 잃고 싶다'는 소원을 빌게 된다.
마침내 이 소원을 이뤄줄지도 모르는 방법을 실행으로 옮기는 보리. 그 이후 보리는 다른 가족들이 겪었던 또 다른 외로움을 느끼며 가족들을 마침내 이해하게 된다.
코다 아이가 겪는 외로움이 농인들이 바깥세상에서 겪는 외로움으로 치환되면서 영화는 '장애인이 소수자이므로 배려받아야 한다'는 공허한 말보다 훨씬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영화에는 연출을 맡은 김진유 감독의 자전적 경험이 반영됐다. 김 감독은 최근 언론시사회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어머니가 농인이시고 어릴 적 나도 '소리를 잃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보리가 단오제에서 가족 무리와 떨어져 길을 잃는 에피소드도 감독이 직접 겪었던 일이다.
장애가 있든 없든 우리는 모두 같고 모두 소중하다며 보리를 품어주는 가족과 친구 은정은 관객 마음속 깊이 따스함을 전한다.
보리를 연기한 배우 김아송은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됐다. 엄마와 아빠를 연기한 배우 허지나와 곽진석은 실제 부부이고, 영화 속 가족의 강아지 코코 역시 이들이 실제 키우는 강아지다. 배우들은 촬영에 앞서 수어 선생님을 통해 직접 수어를 배웠다.
농인 관람객들이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한글 자막이 있는 '배리어 프리' 버전으로 완성됐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상 감독상을 받았고 독일 슈링겔국제영화제 관객상과 켐니츠상, 농아인협회가 주최하는 제20회 가치봄영화제에서는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당초 지난 3월 개봉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확산으로 개봉이 연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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