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Netflix)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가 언론과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호응에 힘입어 촬영, 미술, 음악 프로덕션의 일문일답을 전격 공개했다.

제주에서 태어난 '요망진 반항아' 애순이와 '팔불출 무쇠' 관식이의 모험 가득한 일생을 사계절로 풀어낸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가 "내 이야기, 동생 이야기, 울 엄마, 아빠 이야기, 시대 배경, 음악, 정서 무엇 하나 허투루가 없는 드라마~ 인생 띵작입니다"(유튜브 고기*******), "<폭싹 속았수다> 디테일 미쳤다 하나하나 의미 있는 포인트가 많아서 넘 즐거움.."​(X icy***)과 같이 시청자들의 호평을 이끌어내며 4막 공개 이후에도 식지 않는 인기를 입증하고 있다.

아이유, 박보검, 문소리, 박해준까지 믿고 보는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과 임상춘 작가의 빈틈없는 스토리텔링, 김원석 감독의 디테일을 살리는 연출력에 섬세한 손길로 몰입도를 높인 베테랑 제작진 일문일답을 공개했다.


[이하 <폭싹 속았수다> 최윤만 촬영감독 일문일답 전문]

Q. 대본을 처음 읽으셨을 때 소감은?

대본을 읽고 어머니 생각이 참 많이 났던 것 같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 삶이 너무 많이 보여서 읽는 동안 많이 울컥했던 기억이 납니다. 촬영감독으로서는 엄청 힘들겠는데,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Q. <폭싹 속았수다>의 촬영 컨셉을 감독님과 함께 어떻게 정하셨는지?

촬영 컨셉은 주로 스토리보드 작업을 진행하면서 이야기가 많이 진행되었던 것 같습니다. 대본 자체의 구성이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교차하면서 서사를 끌고 가기 때문에, 과거의 질감과 현재의 질감을 다르게 갈 것인가 아니면 큰 차별 없이 갈 것인가 등의 이야기들이 주로 많이 이야기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의 가난했던 삶을 표현하기에 어떤 느낌을 가지고 가면 좋을까도 역시 큰 고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시절 삶을 큰 과장 없이 담담하게 표현하고 싶었고, 너무 힘들게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가 가장 크게 목표로 삼았던 부분입니다.

Q. <폭싹 속았수다> 촬영 또는 조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점, 미션이 있었다면?

<폭싹 속았수다>를 준비하면서 가장 염두에 뒀던 부분은 '과하지 말자' 였습니다. 보통 예산이 큰 작품을 맡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부분이다 보니 필요 이상으로 비주얼적으로 공을 들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폭싹 속았수다>​에서는 최대한 평이하고 편안한 비주얼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쉽게 표현하면 금 혹은 은의 재료를 가지고 토속적인 항아리처럼 아웃풋이 나오게 하였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는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였으면 싶었습니다. 배우들이 현장에서 카메라 앞에서 기술적인 부분으로 그들의 연기가 제한되지 않았으면 싶었습니다. 조금 더 좋은 앵글이나 빛을 위해서 배우들의 동선에 대한 제한을 두지 않고 최대한 자연스러운 연기를 캡처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Q. 1인 2역을 연기한 아이유 배우, 문소리 배우와 박해준 배우를 비롯해 배우들이 나이가 들어가는 연기를 하고 많은 인물들이 동시에 나오는 장면을 개성을 놓치지 않으면서 한 번에 어떻게 담으려고 하셨는지?

아이유 배우의 1인 2역이나, 아이유 배우가 나이가 들어서 문소리 배우로 변해가는 과정은 감독님의 연출이나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때로는 의상, 분장 팀에서 준비한 그 시대나 캐릭터 해석에 따른 준비들로 자연스럽게 도움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폭싹 속았수다>​는 대부분 한 씬 안에 많은 배우들이 나오면서 소위 말하는 몸 씬이 많았습니다. 이처럼 몸 씬에서 각각의 배우들의 집중력이나 개성을 놓치지 않고 촬영하는 방법은 그냥 열심히 많이 찍는다 외에는 없었습니다. 저도 이러한 부분이 어려웠던 것 같고, 또 작품을 촬영하면서 이러한 다수의 배우들을 찍는 노하우가 생긴 듯합니다.

Q. 미술팀, VFX팀 등 다양한 팀과 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폭싹 속았수다> 같이 여러 시대를 관통하는 작품을 촬영하면서 미술팀, VFX팀과의 협업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60, 70년대와 같은 시대극은 그냥 촬영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남아있지를 않기 때문에 특히 협업이 중요합니다. 류성희, 최지혜 미술감독님이 준비해 주신 세트를 바탕으로, VFX팀이 후반에 덧붙여준 미술의 완성 혹은 디테일의 추가가 없었으면 결코 완성되지 않았을 장면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촬영감독으로서 제일 중점을 둔 부분은 '만들어진 세트를 최대한 잘 담아내자' 그리고 VFX팀이 캡처된 이미지를 기술적 어려움 없이 완성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가능성 여부를 소통하는데 두었습니다.

Q. 전국의 다양한 로케이션, 세트 등에서 촬영을 진행하셨을 때 어려움은 없으셨는지, 일관된 톤을 맞추기 위해 어떻게 작업하셨는지?

세트와 로케이션, 혹은 같은 로케이션에서도 하나의 장면이 한 장소에서만 촬영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날씨를 맞추거나 하는데 많은 중점을 두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관식'이가 배에서 뛰어내린 후 '애순'이를 만나기 위해 헤엄쳐 가는 장면 같은 경우는 3개의 다른 로케이션에서 촬영이 이루어진 장면입니다. 배 위에 있는 '관식'(박보검)은 부산에서, 방파제에 있던 '애순'(아이유)은 장흥에서, 이런 식으로 다른 장소를 한 씬 안에서 엮을 때는 각 장소를 찍을 때 세심하게 날씨 등의 질감을 맞추기 위해서 노력을 했습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후반 색 보정 과정에서 톤을 맞추기 위해서 노력했던 부분도 있습니다.

Q. 김원석 감독님과의 작업 소감은?

김원석 감독님과는 [나의 아저씨], [아스달 연대기] 등 전작을 통해서 이미 호흡을 맞춰보았던 적이 있어서 특별히 <폭싹 속았수다>에서 호흡을 맞추는데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워낙 많은 준비를 하시고, 디테일을 잡아내는 데 능숙하신 감독님이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Q. 함께 작업하신 배우들과의 작업 소감은?

진심으로 영광이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배우들의 연기를 가장 먼저 직관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긴 촬영에서 가장 큰 위안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또 이렇게 멋진 배우들을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촬영이 있다면?

많은 씬들이 기억에 남지만, '동명'이 죽고 오열하는 '애순'과 '관식' 등 너무 많아서 특정짓기 힘들지만, 개인적으로 여관에서 '애순'과 '관식'의 가출 후 첫날밤 장면이 기억에 남는 촬영입니다. 한 번의 카메라 움직임으로 이들의 감정을 잡아내기 위해서 많은 테이크를 갔던 기억들, 이 원씬 원컷 장면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Q. <폭싹 속았수다>를 작업하신 소감이나 보람 등 한 말씀 하시자면?

개인적으로 제 필모그래피에 한 획을 긋게 된 작품을 촬영할 기회를 주신 김원석 감독님께 감사드리고, 한동안 만나기 힘든 좋은 스토리와 좋은 배우들, 대한민국 최고의 스텝들과 같이 호흡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솔직히 가장 힘들었던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이하 <폭싹 속았수다> 류성희, 최지혜 미술감독 일문일답 전문]

Q. 대본을 처음 읽으셨을 때 소감은?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한자리에 앉아 단숨에 끝까지 빠져들며 읽었습니다. 특히 이야기를 사계절로 나누어 서사를 풀어가는 방식이 강하게 인상에 남았고, 그 구조 덕분에 머릿속에 시각적인 이미지들이 또렷하게 떠올랐습니다. 감정들이 너무도 선명해서, 그 감정들을 어떻게 풍경화 할 수 있을지 계속해서 상상하며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장면마다 빛의 농도, 계절의 감각, 인물의 감정과 특성들이 겹겹이 덧입혀지며 자연스럽게 하나의 풍경이 떠올랐고, 그 상상은 지금 화면 위에 펼쳐진 결과물과도 아주 닮아있었습니다. 드물게도 시나리오 자체가 매우 시각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당시 이미 이 세계를 어떤 방식으로 구현할 수 있을지 직감적으로 설계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미술감독으로서 가장 크게 다가왔던 것은 '시간'을 어떻게 표현하는가였습니다. 단순한 시대의 재현을 넘어, 인물들의 감정과 기억으로서의 공간 - 어쩌면 사실성보다 더 중요한, 그 시절 그들의 감정이 반영된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이 작업은 시작되었습니다.

Q. <폭싹 속았수다>의 전반적인 프로덕션 디자인의 컨셉 또는 주안점에 있으셨다면?

<폭싹 속았수다>​는 단순히 하나의 사건을 그린 시대극이 아니라, 한 가족의 희로애락과 함께 한국 현대사 65년을 관통하는 여정을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미술적으로도 시간, 공간, 인물이라는 세 가지 축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단순한 시대 재현에 그치지 않고 각 시대가 지닌 공간의 정서를 컬러, 패턴, 질감 등 미술적으로 활용 가능한 요소들로 풀어내려 했고 고증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또 현재의 시선에서도 세련되게 보일 수 있도록 디자인하면서, 젊은 세대가 시대극을 보며 또 다른 방식으로 공감할 수 있도록 시도한 점도 중요한 포인트였습니다. 

김원석 감독님은 이 작품의 미술을 단순한 시대 재현의 수단으로 보지 않으시고 대본에 담긴 정서와 아름다움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데 큰 가치를 두셨습니다. 작은 소품 하나하나, 인물의 글씨체 하나까지도 고증과 디테일을 직접 꼼꼼히 챙기고 섬세하게 확인하고 컨펌하셨고, 미술 회의 현장뿐 아니라 촬​영 중간에도 임상춘 작가님께 직접 전화해 인물의 감정과 미술적 정서를 함께 조율하시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런 적극적인 소통이 저에게는 굉장히 새롭고 멋지게 다가왔고, 함께 만들어간다는 감각이 있어 더 뜻깊은 경험으로 남아 있습니다.

Q. 긴 세월, 시대를 시청자에게 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

이 시대의 제주와 서울을 촬영할 수 있는 장소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본에 등장하는 다양한 공간들을 소화할 수 있는 세트가 필요했고, 특히 주된 배경인 제주도의 어촌 마을과 제주 시내 거리를 구현하는 작업은 세트의 규모가 컸던 만큼 많은 고민이 필요했습니다. 부지를 찾는 것부터가 큰 과제였고, 로케이션 섭외팀이 전국을 돌아다닌 끝에 안동에서 겨우 적절한 부지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대본 속 장소들과 거리감을 모두 담아내기 위해, 하나의 세트를 시대에 따라 여러 번 전환하여 활용하는 계획이 필수적이었고, 디자인 단계부터 동일한 공간이 시대의 변화나 인물의 변화에 따라 다양하게 보일 수 있도록 치밀하게 설계했습니다. 만들어진 세트를 단지 고정된 공간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서사와 감정의 흐름에 따라 공간을 전환하고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운용해야 했고, 같은 장소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도록, 색, 재질, 소품, 사용감 등을 섬세하게 조율해 나갔습니다. 결국 이 작업은 공간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시간의 변화와 인물의 흔적이 축적된 장소로 어떻게 설득력을 가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Q. 시대의 디테일을 보여주는 플래카드나 전단지 등 시대를 구현하기 위한 소품들을 어떻게 만드셨는지?

<폭싹 속았수다​>는 시대 자체가 '인물'이자 '서사'의 일부였기 때문에 시대를 단번에 체감할 수 있는 소품의 역할이 정말 중요했습니다. 시대적 디테일이 인물의 감정이나 상황을 설명하는 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런 소품 하나하나에 굉장히 많은 고민과 노력을 담았습니다. 플래카드나 전단지, 포스터 같은 것들도 당시의 문체, 폰트, 색감, 레이아웃까지 고증해서 미술팀과 소품팀이 협업해 제작했고, 출력 및 에이징 작업까지 하나하나 손으로 작업해 만들어 냈습니다. 이 작업은 단순히 '예쁘게 꾸미는 것'을 넘어서 그 시대를 살아간 인물들의 감정과 기억을 시각적으로 되살리는 작업이었고, 미술팀과 소품팀 모두 정말 애정을 가지고 치열하게 작업에 임해주셨습니다. 화면에 스쳐 지나가는 한 장의 포스터, 한 장의 신문이지만 그 안엔 수많은 시간과 손길이 담겨 있다는 걸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Q. VFX(시각효과, CG)팀과 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안동에 지은 어촌 마을 세트의 핵심은 항구를 짓고 배를 띄우는 물리적 공간을 구현하는 일이었고, 동시에 포구의 바다를 CG로 자연스럽게 확장해 내는 작업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CG팀과 긴밀하게 소통하며 CG가 실제 공간과 이질감 없이 어우러지도록 조율하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특히 이번처럼 리얼리티가 강조되는 작품의 CG는 조금만 어색해도 많은 이들의 눈에 쉽게 거슬릴 수 있기 때문에 훨씬 더 섬세하고 정교한 방식으로 작업이 이뤄져야 했습니다. 실제로 이번 작품에는 티나지 않게 사용된 CG 작업이 상당히 많았고, 90년대 배경의 다양한 로케이션에서는 현재의 흔적들을 지우고 그 시대에 어울리는 디테일들을 더해가는 방식으로 고증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예를 들어,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 위 배의 장면은 특수효과팀과 CG팀의 정교한 합이 만들어낸 장면이었고, '금명'이와 '영범'이가 군 휴가 중 헤어지는 기차역 장면도 인물과 배경을 따로 촬영해 합성한 컷인데, 알고 보면 CG지만 너무 자연스러워서 전혀 티가 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감쪽같은 디테일들이 이번 작업의 숨은 매력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전체적으로 미술작업으로 보이지만 그 뒤에는 타팀들과의 협업이 많았습니다.

Q. 고증과 창조, 세트와 로케이션, 오픈 세트 등을 어떻게 조화롭게 작업하셨는지?

이번 작업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고증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인물의 서사와 감정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리적 배경, 시대적 배경을 넘어, 감정으로서의 풍경이 될 수 있는가 - 그 질문이 디자인의 중심에 놓여 있었습니다. 사실적인 배경을 전달하기 위해 로케이션을 많이 사용하고 싶었지만,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거의 없었고, 미술적인 드레싱 없이 그대로 사용한 장소는 '금명'이가 결혼한 성당, '관식'이가 건강검진을 받은 병원 정도였습니다. 고증과 리얼리티는 시청자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항상 세심하게 신경 써야 했지만, 이 시나리오처럼 감정이 계절의 흐름처럼 살아 있는 이야기에서는 때로는 인상파나 표현주의 회화처럼, 기억이 사실성을 압도하는 순간들이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사춘기나 첫사랑을 떠올릴 때, 공간의 디테일보다는 눈부신 빛, 조명의 감도, 공간의 색감, 냄새처럼 감각적인 기억이 더 선명한 것처럼요. 그래서 '애순'과 '관식'의 인생에서 기억으로 남을 법한 공간들 - 예를 들어 그들의 청춘, 가출했던 도시, 짐을 통째로 도둑질당하고 경찰서까지 갔던 청춘의 도시 부산은 마치 강렬한 꿈처럼 기억될 수 있도록 상정했고, 조명, 벽지, 의상 컬러와 패턴을 사용해 가장 몽환적인 색감으로 접근했습니다. 또 그들의 첫 신혼방, 첫 셋방이었던 도동리 상회 방 같은 공간은 한 칸짜리 작은 방이지만 그들의 감정처럼 사랑스럽고 생생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디자인 요소들을 구성했습니다. 그들의 공간뿐 아니라 등장인물 모두의 공간이 소박하지만 초라하지 않게 보이기를 바랐고, 그 점을 전반적인 디자인의 정서로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Q. 공간별로 컨셉과 특징에 대해서 말씀해 주신다면?

이 작품처럼 시대가 빠르게 흐르는 작품에서 각각의 공간을 디자인할 때는 공간이 인물들의 상황을 직관적으로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미술팀은 항상 대본에 표현되지 않은 부분까지 각 공간만의 스토리를 부여하며 작업해야 했는데, '이 캐릭터가 여기서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를 상상하면서 디자인을 풀어갔습니다. 예를 들어 '애순'이 양배추를 팔던 장터는 시간이 흐르며 생선과 채소를 파는 시장으로 - 또다시 '애순'이 좌판을 펼치는 공간으로 변화합니다. 한 인물의 생존기이자 시대의 변화까지 상징하는 장소였기에 세트 구성 자체부터 변화를 고려해 설계했고, 시대마다 간판, 좌판의 재질, 도로 바닥 등 디테일을 달리해 표현했습니다. 

'휘앙새 다방'은 '애순'이 '상길'과 맞선을 보던 공간인데 시간이 흐른 뒤 '순이네 세 이모네'으로 바뀝니다. 이 공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과거의 10대 '애순'이 맞선을 보던 그 자리에서 현재의 40대 '애순'이 숟가락을 붙잡아 지지해 주는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상길'이와 맞선 보던 공간도 어떻게 보면 젊은 시절의 추억이기 때문에 현실과 생존의 공간인 '순이네 세 이모네'보다 화사한 색상들을 사용했습니다. 하나의 세트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표현하는 방식이 필요했기에 그 두 시절의 정서가 자연스럽게 맞닿을 수 있도록 공간의 색과 질감을 조율하며 작업했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봉천동 '깐느극장' 장면은 총 네 개의 서로 다른 장소에서 촬영해 하나의 공간처럼 구성한 사례입니다. 외부는 합천 세트장, 로비와 상영관은 광주, 영사실은 종로, 매표소 내부는 실내 세트에서 각각 촬영했고, 짧은 장면이지만 각 장소의 시대적 분위기를 살려 조화롭게 이어지도록 연출했습니다. 

'금은동이네'는 충남 당진에 있는 비어 있는 건물에서 촬영했습니다. 드라마 설정처럼 정말 허허벌판에 건물 하나만 덩그러니 놓인 장소였고, 내부는 거의 세트를 짓다시피 하며 정성껏 공간을 구성했습니다. 이후 금은동 가족이 장사를 시작하며 점점 잘되고, 주변에도 가게가 하나둘 들어서는 흐름까지 보여줘야 했기에 짧은 시간 안에 변화의 리듬을 구현해야 했고, 특히 추운 겨울의 촬영이라 미술팀이 정말 고생을 많이 했던 공간이기도 합니다.

Q. 가장 공을 많이 들인 공간이나, 기억에 남는 공간이 있다면?

제주도의 어촌 마을을 짓는 작업은 미술팀에게 가장 도전적인 일이었습니다. 제주 전통 가옥은 물론이고, 중산간 지역의 지형, 포구, 토양, 식생까지 - 이 모든 것을 육지에 구현해야 했기 때문에 상당한 예산과 인력, 그리고 정교한 계획이 필요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공간이 자연스럽고 '진짜처럼' 느껴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습니다. 세트 팀은 수백 톤의 흙을 쏟아부어 지형을 만들었고, 제주도에서 육지 반입이 불가능한 현무암 대신 베트남과 철원에서 공수한 현무암으로 제주 돌담을 쌓았으며 조형적으로 더 강조되거나 부족한 부분은 스티로폼과 폼 등을 이용해 하나하나 제작하고 채색해 채워 넣었습니다. 

또 남해 지역과 제주도의 식생들을 공수해 자연스럽게 배치했고, 미술 소품팀의 정성 어린 손길들이 더해져 마을에 진짜 숨을 불어넣을 수 있었습니다. 세트뿐 아니라 로케이션 공간 하나하나에도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예를 들어, 90년대 서울 거리 장면은 실제로 전주와 군산의 거리 전체를 세팅해 촬영했습니다. 시대 분위기를 살릴 수 있는 상점 구성부터 간판, 그래픽, 세팅 소품들까지 디테일하게 배치해 시대의 감각을 구성했고, 80~90년대 장면들에서는 현장에 남아 있는 현대적인 흔적들을 티나지 않게 지우고 덮는 작업에도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습니다.

Q. 류성희 미술감독님이 작업하셨던 대표적인 <국제시장>과 <변호인>​ 등의 시대극 작업들과 달랐던 점이 있으셨는지?

<국제시장>과 <변호인> 모두 제(류성희 미술감독)가 직접 작업했던 시대극이기 때문에, 단순히 비교라기보다는 다른 결의 접근이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두 작품 모두 특정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보다 역사적 서사의 맥락을 시각적으로 재현해야 하는 작업이었고, 관객에게 당대의 분위기와 사건을 보다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심이었습니다. 공간이 갖는 의미가 다분히 설명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면 <폭싹 속았수다>​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긴 하지만, 그 안의 인물들을 통해 시간을 상대적으로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만드는 서사였습니다. 어떤 특정 사건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내면을 통과한 시절들을 그려야 했기 때문에 공간 또한 훨씬 더 사적인 정서와 기억의 층위로 접근했습니다. 그 안에서 살아 있는 감정의 호흡 - 마치 누군가의 기억 속에 떠오르는 색감, 재질, 빛의 각도 같은 것들에 더 귀를 기울이며 만들었습니다.

Q. <폭싹 속았수다>​를 보신 후의 감상이나 보람 등 한 말씀 하시자면?

<폭싹 속았수다>​는 저희 미술팀 모두가 대본을 읽을 때부터 눈물을 흘리고, 진심을 담아 작업에 임했던 작품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장기간에 걸친 지난하고 물리적으로도 힘든 작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탈자 한 명도 없이 끝을 맺었던 것 같습니다. 20대 젊은 후배들도 살아보지 못했던 시대의 그림을 관객에 가닿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무한한 애정을 담아 한 장면, 한 공간을 차곡차곡 만들어갔고, 다른 팀과의 협업, 연출과 배우분들의 노력으로 소중히 잘 완성된 것 같습니다. 

특히 시청자분들께서 그 노력과 정성을 고스란히 느껴주시고, 따뜻한 반응으로 되돌려주신 것을 보며 팀 모두가 뿌듯함과 큰 보람을 함께 느꼈습니다. 완성된 드라마를 보고 나서도 이런 작품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정말 특별하고 아름다운 여정에 함께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하 <폭싹 속았수다> 박성일 음악감독 일문일답 전문]

Q. 대본을 처음 읽으셨을 때 소감은?

큰 기대를 가지고 열어본 대본은 아주 잘 쓰여진 장편소설을 읽은 기분이었습니다. 마치 한 사람의 인생을 바로 옆에서 들여다보는 것처럼 감정이 요동쳤습니다. 인물의 감정이 어떤지, 표정과 복장과 몸짓까지도 씬마다 아주 디테일하게 잘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지문의 표현이 제가 마음껏 상상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이었는데 예를 들어, 2화 남포장 간판을 설명하는 지문은 '판자에 궁서체 페인트로 써붙인 여인숙 남포장 간판'이라고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궁서체라는 표현에서 저는 좀 더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었고 이런 상상의 자극 덕분에 작곡하는 데 있어 좀 더 입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Q. 65년의 시간을 가로지르고, 파노라마 같은 삶과 감정을 담은 만큼 음악을 작업하는 데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점이 있다면?

저희 작품에서는 크게 세 가지 시대적 배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반부에는 1960년대를 표현하는 아주 예스러운 음악들이 필요했고, 중반부에는 1980-90년대의 향수 어린 음악들이, 후반부에는 현재 시점의 음악까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흔히 그간 제가 택해왔던 장르적 접근보다는 감정에 집중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매번 다른 낯선 음악으로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면 음악의 낯섦이 시청자의 감정 흐름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인물이 많은 건 그만큼 그 인물을 표현하는 음악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연히 부담스러운 건 맞지만 대본에 이미 인물의 감정이 어떤지, 우리 이야기에서 어떤 역할로 표현되어야 하는지 잘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수월하게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Q. <폭싹 속았수다>의 전반적인 음악 컨셉 또는 주안점에 대해 김원석 감독님과 상의한 부분이 있을지?

감독님과의 첫 회의에서는 서양음악에 국악기를 활용된 개성 있는 음악이 필요하다는 정도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앞서 표현한 것처럼 장르적 접근보다는 감정에 오롯이 집중해야 한다는데 이견이 없었습니다. 전반부에 만든 음악을 중후반부까지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국악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되 본격적인 국악 조성이나 리듬까지는 차용하지 않았습니다. '애순의 테마'의 경우, 국악 피리로 플루트를 역할을 대신했고 '청춘가'의 경우, 6-70년대 서양에서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던 디스코 리듬에 거문고를 얹는 형식으로 제한적으로 사용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서양음악에 더해진 국악기가 한국적인 정서를 만들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해냈다고 생각했습니다.

Q. 선곡을 진행하실 때 프로듀서, 미술감독님, 편집 기사님과는 어떻게 선곡 작업하셨는지?

선곡은 감독님께서 대본 개발 단계부터 촬영 때까지 이미 많은 고민이 있으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른 키스탭분들의 의견도 많이 청취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감독님과 [시그널]을 함께 작업할 때 60년대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오히려 선곡에 사용된 대부분의 곡들은 그 당시 감독님과 제가 생각하는 한국의 잘 만들어진 고전음악 중에 다 선곡을 했다고 말해도 무방합니다. 음악은 사람들에게 그 시대의 기억을 바로 소환할 수 있는 엄청난 위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작품에서는 선곡으로 시대상을 표현해야 해서인지 특히 전반부 에피소드에 선곡이 많았는데 그렇기 때문에 꼭 필요한 선곡이 아니라면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저는 전반부의 선곡을 꼭 필요한 씬이 아니면 줄이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몇 씬은 예정되어 있는 선곡이 삭제되고 새로 작곡한 오리지널 음악으로 교체되기도 했습니다.

Q. 대본에서 받은 영감과 실제 선곡 사이, 과정에 대해서 한 말씀 하자면?

대본에 왜 그 곡이 쓰여지게 되었을지 이유를 파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때는 감독님, 작가님께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특히 전반부 에피소드의 경우 감독님이 어느 정도 선곡을 고민하신 뒤에 제가 합류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의외로 실제 선곡에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은 저작권 이슈였습니다. 어디까지가 꼭 필요한 선곡의 영역인지, 어디까지가 타협을 할 수 있는 영역인지 감독님은 물론 프로듀서들과의 의견을 아주 여러 차례 조율해야 했습니다. 저는 쉽게 여러 곡들을 제안할 수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한 곡의 선곡이 결정되기까지에는 여러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필요했습니다.

Q. 신중현 작곡, 작사인 김정미의 '봄'은 오프닝 곡으로 메인 테마처럼 사용되는데, 어떤 이유로 이 곡을 선정하셨는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프닝 시퀀스에 사용된 김정미의 '봄'도 감독님의 선택이었습니다. '봄'이 수록된 김정미의 앨범은 대중들에겐 유명하진 않아도 너무나 잘 만들어진 수작입니다. 저도 역시 그 앨범은 수없이 들어서 잘 알고 있는 곡이기도 했습니다. 가사의 내용과 음악의 정서가 우리 작품과 너무 잘 맞았고 시청자들에게도 잘 전달되었다고 생각합니다.

Q. 양희은, 남인수, 산울림, 김추자, 장덕, 심수봉, 김연자 등 한 시대의 대표곡들이 섬세하게 배치되어 있는데, 어떤 곡들이 기억에 남으시는지, 그리고 그렇게 선곡하신 이유는? 그리고 진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문자 그대로의 BGM으로 들어가는 곡까지 총 몇 곡의 삽입곡을 선곡하셨는지?

2부 '애순', '관식'이 부산으로 떠나는 장면에서의 김정미의 '바람'에서 음악이 멈췄다가 통행금지 사이렌을 듣고 놀라는 '애순', '관식'의 표정, 3부 바다를 수영해서 건너는 '관식'의 장면에서 흐르는 장덕의 '얘얘', 5부 함중아의 '웃어주세요'에서 흐르는 마치 '부상길'의 꼴을 보고 나오는 것 같은 웃음소리, 8부 버스터미널에서 인사를 나누는 '관식'과 '금명' 장면에서 흐르는 이치현과 벗님들의 '당신만이', 11부 '영범' 엄마의 시간의 흐름 장면에 나오는 노고지리의 '찻잔' 등 어느 하나 빼놓을 씬이 없습니다. 하지만 굳이 한 곡을 고르자면 마지막까지 가장 고민을 했던 씬은 12부의 '춘옥'(나문희)의 죽음 씬입니다. 여러 곡의 후보가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정미조 선생님의 2016년 작 '귀로'를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원곡을 그대로 사용하기에는 선생님의 가창이 훨씬 더 담담한 기분으로 담겼으면 좋겠다고 들어서 정미​조 선생님께 연락을 드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재녹음을 부탁드렸고 기꺼이 키를 낮춰서 우리 작품에 맞게 담담한 정서를 담아 다시 불러주셨습니다. 원래의 마스터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원작자에게 요청해서 드라마의 한 씬을 위해 노래 녹음을 다시 하는 일이야말로 매우 이례적인 상황입니다. 이 기회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합니다. 선생님의 열정 덕분에 이 씬을 잘 완성할 수 있습니다. 

선곡에는 가요가 59곡, 팝송이 4곡, 민요가 3곡, 클래식 5곡, 시대상을 반영하는 라디오 시그널, CM송, 만화주제가 등을 더해 총 82곡이 사용되었습니다. [두시의 데이트] 시그널송은 반주를 찾을 길이 없어 똑같은 사운드로 복각했고, '애순', '충섭'이 TV를 통해 광고를 보는 '필동국시' CM송은 작가님의 지문에 맞추어 새로 작곡되기도 했습니다. 16부 관식의 병원 씬에서는 김광석의 '나의 기타 이야기'를 선곡해서 사용하려고 했는데 대사 전달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되어 새로운 연주 버전인 오리지널 스코어 버전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Q. 평소 플레이리스트에 다 들어있던 곡들일지, 새롭게 발굴된 삽입곡이 있을지?

신중현, 유재하, 김광석, 조용필 등 한국 음악계의 거장들의 음악에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잘 모를 수 있지만 40대 이상이라면 모를 수가 없을 만큼 유명한 곡들이 대부분입니다. 대부분 제가 잘 알거나 제 플레이리스트에 존재하는 곡들이지만 노고지리의 '찻잔', 박경원의 '만리포 사랑'처럼 처음 알게 된 곡들도 있습니다. 저는 음악감독이 되고 난 뒤로 한국음악의 역사에 대해 심취했습니다. 제 기억 속에 존재하는 음악들은 90년대 이후의 음악들이기 때문에 이전 시대의 음악의 경우 평론가들의 평가를 찾아보고 음악을 찾아 듣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와 감독님 모두 신중현 선생님의 빅 팬이기도 합니다.

Q. 비틀즈의 'Yesterday' 등 삽입곡의 저작권에 대한 부분 등 최종적으로 해당 곡을 사용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으셨는지?

해외의 경우 저작권 규정이 매우 엄격하고 까다롭습니다. 그중 가장 저작권 이슈가 복잡한 아티스트가 바로 비틀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승인을 위해서는 어떤 씬에, 왜, 얼마간의 길이로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 승인 신청 전에 보고해야 하고, 또 최종 승인 허가를 받으려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런 이유들 때문에 한국 드라마에서 비틀즈의 원곡을 사용한 건 저희 작품이 처음인 것으로 전해 들었습니다. 전 세계인들의 뇌리에 남아 있는 멜로디와 가사, 그 이유만으로도 선곡의 충분한 이유가 되었을 것입니다.

Q. 음악이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의미에 대해 한 말씀 한다면?

한국음악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시대상이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60년대의 한국음악은 미8군 클럽을 기반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미국의 영향이 매우 컸고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는 대학가요제의 영향력 때문에 포크 음악과 밴드 음악이 주류를 이룹니다. 라이브 기반의 활동 영역 덕분에 각자 아티스트마다 고유한 색채가 있고 메시지는 명확하며 가사는 시적입니다. 음악은 듣는 이의 시간과 기억을 함께 저장하는 강력한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Q. OST 중 '밤 산책', '청춘가', '이름', '활활' 등 창작곡은 어떤 컨셉으로 작업하셨는지?

저희 작품은 그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 슬픔이 있을 뿐 결과적으로는 따뜻한 작품입니다. 따뜻한 감정에 큰 스케일감을 더하기 위해 체코에 오케스트라 녹음 스케줄을 확정해두고 곡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만든 곡을 저희 작품의 메시지를 한 곡으로 관통하는 최백호의 '희망의 나라로'였습니다. 새로 만든 창작곡이지만 마치 그 시대에 태어난 음악처럼 들리길 원했고 그때 사용하던 아날로그 녹음 방식과 장비를 그대로 구현했습니다. 드럼을 녹음할 때는 어떻게 하면 화려하지 않은 소리로 담겨질까 고민했고 이후에는 베이스 기타의 톤이 너무 세련된 것 같아 폴 매카트니가 그 당시 즐겨 쓰던 Höfner(회프너)​를 해외에서 공수해서 사용했습니다. 조금 더 힘찬 '관식'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키를 재조정하고 연주를 다시 하는 등 재녹음을 꽤 여러 번 진행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아름다운 강산'처럼 시원한 후렴을 가진 통쾌한 곡을 쓰고 싶었습니다. 2부 엔딩에 나오는 '관식'이의 씩씩한 날라차기 발걸음 템포에서 디스코를 떠올렸고 그렇게 만들어진 곡이 추다혜의 '청춘가'였습니다. 애초에 데모 단계에서는 베이스기타 리프로 시작하는 곡이었는데 감독님의 제안으로 어울리는 국악기를 고민하다가 거문고를 선택했습니다. 곡을 만들고 얼마 되지 않아 녹음을 위해 해외 출장을 출발해야 했는데 불현듯 씽씽밴드에서 노래하던 추다혜 씨가 떠올랐습니다. 이 곡을 듣고 있으면 프라하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일면식도 없는 추다혜 씨에게 연락하던 그날 밤이 떠오릅니다. 

마찬가지로 곽진언의 '이름'도 해외 녹음 직전 약 일주일간을 괴로워​하면서 작곡했던 곡입니다. 타이트한 일정 때문에 오케스트라는 섭외되어 있고 녹음할 곡이 없으니 당연히 가수도 섭외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보통 가수가 섭외되어야 최종 녹음용 Key가 확정되기 때문에 섭외가 되어있지 않다면 녹음을 할 수 없습니다) 마감의 힘인지 거의 대부분의 날을 성과 없이 보내다가 출발 하루 전 녹음실 피아노에 앉아 곽진언 씨를 상상하며 3분 만에 써 내려간 곡입니다. 무작정 곽진언 씨에게 연락해서 '당신을 상상하고 쓴 곡이니 꼭 불러주셨으면 좋겠다'고 부탁했고 평소 그의 가사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작사도 함께 의뢰했습니다. 그 때문에 편집본을 직접 보러 녹음실에 며칠을 출근하며 저희 작품 전편을 다 보고 간 뒤 몇 주 후 작사를 완성해 주었고 비로소 이 곡이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Q. 아이유 배우와 [나의 아저씨]에 이어 두 번째 작업이었던 '밤 산책' 작업은 어떠셨는지?

그녀는 배우로서뿐만 아니라 이미 완성형 뮤지션입니다. 특별한 디렉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단지 디어(d.ear)님이 작곡한 곡에 가창을 제안했을 뿐입니다. 개인적인 소회를 밝히자면 '금명'이가 '애순'에게 불러주는 딸의 마음처럼 느껴졌습니다.

Q. 음악적으로 '애순'과 '관식' 삶의 사계에 있어서 어떤 차별점이 있었는지, 작곡과 선곡 모두 어떤 점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셨는지?

사계를 따라 음악을 배치하진 않았고 감정에 조금 더 집중했던 것 같지만, 계절의 느낌에 따라 설정한 씬의 음악적 디자인을 몇 가지 설명하자면, 1부 '병철'의 양배추밭에서 흐르는 '애순의 테마'를 위해 따뜻한 느낌을 주는 첼로가 멜로디를 시작하고 이어지는 국악 피리는 더 목가적으로 느껴지게 소프트한 감정으로 연주했습니다. 5부 '애순'이가 '광례'의 집을 다시 사서 들어가는 씬은 김정미의 '햇님'을 선곡했는데 음악보다는 여름밤의 풀벌레 등의 효과음이 더 잘 들리도록 음량을 설계했습니다. 11부 '금명', '영범'의 이별씬에서는 홍이삭의 '내사랑 내곁에'를 편곡해서 사용했는데 앞부분은 차분한 대사 톤에 맞추어 홍이삭 님의 담담한 키에 맞추어 시작했다가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간주 이후 전조하여 보컬이 더 돋보이는 전략으로 편곡했습니다. 16부 '동명'의 무덤 앞에서 흐르는 '애순의 테마'는 1부와는 달리 스캣(Scat) 창법의 목소리와 차가운 느낌으로 연주한 피리가 전체 씬을 이끌어 나갑니다.

Q. [미생], [나의 아저씨], [아스달 연대기] 등 많은 작품을 함께 하신 김원석 감독님과의 <폭싹 속았수다>는 음악적으로는 어떻게 달랐는지, 김원석 감독님과의 작업 소감은?

저는 김원석 감독님과 인연이 깊습니다. [성균관 스캔들]에서 OST 노래를 담당했었고 이후 음악감독으로 첫 입문작이 [몬스타]였습니다. 이후 [미생], [시그널], [나의 아저씨], [아스달 연대기]에 이어 이번 작품이 일곱 번째 작품입니다. 이전부터 오랜 시간 활동을 해왔지만 영상 음악가로서의 작품주의적 해석이나 접근 방식만큼은 감독님의 영향을 매우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폭싹 속았수다>​는 저에게는 큰 도전이었습니다. 방송이 되면서 후반작업을 만들어가는 기존 드라마 제작 시스템과는 달리 최종 편집본을 보고 음악을 작곡할 수 있었고 매 씬에 맞추어 새로 연주하고 믹싱도 하는 등의 다른 시도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상대적으로 있었습니다. 이런 제작 환경의 변화가 저뿐만 아니라 감독님에게도 후반 작업에서의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 한 씬도 허투루 넘어가지 않는 완성도를 가진 <폭싹 속았수다>에 참여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Q. <폭싹 속았수다>가 다른 작품의 음악 작업과 달랐던 점이나 작업하면서 어떠셨는지?

<폭싹 속았수다>​는 음악적 노력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면에서도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습니다. 보통 거치는 음악 편집, 완성된 최종 음악을 편집본에 맞게 음악을 삽입하는 과정, 단계를 끝내고 돌비 애트모스(Dolby Atmos)로 서라운드 음악 믹싱을 처음부터 다시 진행했습니다. 바닷가 마을 앰비언스(ambience)가 앞쪽으로 흐를 땐 음악이 자연스레 뒤쪽으로 움직이면서 흐른다거나 태풍에 '동명'을 잃은 '관식'이 울부짖을 때, 카메라가 하늘에서 바닥을 향해 비출 때는 음악도 같이 천장에서 쏟아져 내리는 등의 기술적 시도했습니다. 돌비 애트모스(Dolby Atmos)는 흔히 영화관에서 사용하는 5.1 서라운드 믹싱보다 더 진보한 서라운드 믹싱 기법입니다. 그간 음향에서만 Dolby Atmos 기반으로 작업하는 게 통상적인데 영상 음악 작업에 있어 호기심 스튜디오는 앞으로 점점 발전될 디바이스를 통해 많은 시청자들이 더 나은 서라운드 콘텐츠를 체험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Q. 시청자들에게 <폭싹 속았수다>가 어떤 작품으로 남으면 좋을지?

매회 편집본을 보면서 음악을 구상해야 하는데 편집본을 보면 자꾸 눈물이 났습니다. 아마 제 마음속 깊이 공감하는 바가 컸던 이유였을 것입니다. 감정이 소란할수록 더 잘 해내고 싶어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세세한 부분까지도 저희 음악 스태프들과 함께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저의 작은 소망은 이 작품의 시청자들이 매 회차 엔딩크레딧까지 넘기지 않고 여운을 함께 느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 '관식'이 못 가진 라이방도, 지프차도 이미 다 가진 저는(우리는) 남은 생을 조금 더 '관식'처럼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길 희망합니다.

<폭싹 속았수다>를 보다 몰입도 있고 세심하게 완성한 베테랑 최윤만 촬영감독, 류성희, 최지혜 미술감독, 박성일 음악감독의 일문일답을 공개한 <폭싹 속았수다>는 오직 넷플릭스에서 절찬 스트리밍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