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영 감독의 신작 '내 이름은'이 4·3사건이라는 민감한 소재로 인해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제작되어 15일 개봉했다. 40년 이상 영화를 만들어 온 감독의 이번 작품은 중첩된 죄의식과 세습되는 폭력의 메커니즘을 탐구하며, 주연 염혜란의 연기력을 조명한다.
정지영 감독의 40년 영화 인생을 집약한 신작 '내 이름은'이 15일 개봉했다. '내 이름은'은 '영옥'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싶은 18세 소년과 그의 어머니 정순의 이야기를 통해 제주 4·3사건의 아픔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40년 넘게 꾸준히 영화를 제작해 온 정 감독이지만, 이번 작품은 유독 쉽지 않은 제작 과정을 거쳤다고 토로했다. 그는 14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나 "저라는 캐릭터는 무미건조해서 개봉 앞두고 초조하거나 잠 못 자고 하지 않는데 이번엔 다르다. 고생을 많이 한 영화여서 그런지..."라며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 제작 과정의 난관과 크라우드 펀딩 성공
'내 이름은'은 제주 4·3 평화재단의 공모전에서 당선된 각본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하지만 4·3사건이라는 민감한 소재 때문에 많은 영화 제작사들이 투자를 망설이며 제작이 난항을 겪었다. 이에 정 감독은 초기 단계부터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제작 방식을 택했다. 함세웅 신부, 백낙청 교수, 조정래 작가, 현기영 작가 등 원로 예술가 및 인사들로 제작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관객들의 후원을 이끌어냈다. 이렇게 모인 제작비로 영화는 세상에 나올 수 있었지만, 정 감독은 예산 부족으로 인해 더욱 깊이 있는 연출을 하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돈이 모자랐기 때문에 어려웠던 게 있다. (제작비가) 더 충분했으면 아주 감동적인 영화를 찍을 수 있었을 거라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 '내 이름은'에 담긴 4·3사건의 다층적 의미
영화는 4·3사건을 전면적으로 다루기보다는 1998년을 배경으로 아들과 어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우회적으로 접근한다. 영옥의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가 비중 있게 다뤄지며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을 보여준다. 정 감독은 4·3사건과 영옥의 학교 폭력을 병치시킨 이유에 대해 "과거의 폭력이 잠잠해지다가 멈추는 게 아니고 세습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집단 폭력이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일어나는지도 보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등장인물을 단순히 피해자로만 규정하지 않고 폭력의 가해자 역할도 함께 그리며 복잡한 인간 군상을 담아냈다. 그는 "피해자지만 가해자 역할을 한 사람도 있고, 한 동네에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이 사는 경우도 있었다"며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중첩된 죄의식을 영화에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민간인에게 총을 쏜 이들 역시 생존을 위해 나선 경우도 있었다며, 궁극적으로 모두 국가 폭력의 희생자임을 강조했다.
▲ 염혜란 배우와 감독의 진심 어린 협업
'내 이름은'은 정 감독의 작품 중 드물게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영화다. 정순 역을 맡은 염혜란은 정 감독이 전작 '소년들'(2023)에서 단역으로 출연했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준 것을 인상 깊게 봐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고 밝혔다. 정 감독은 염혜란 배우에 대해 "한 시대를 주름잡을 배우"라며 "천부적인 연기자"라고 극찬했다. 이어 "정순은 한국 현대사에서 아픈 역사, 큰 폭력의 역사를 거친 인물인데, 염혜란 씨가 잘 소화해줬다"고 덧붙였다. 여든에 가까운 나이에도 끊임없이 신작을 선보이는 현역 최고령 감독으로서, 정 감독은 앞으로도 작품 활동을 이어갈 의지를 보였다. 그는 "많이는 생각을 안 하려고 한다. 다음 작품 준비하고 있는데 그다음 작품은 뭐할지를 생각 안 한다. 이 작품 끝나고 지금 준비하는 작품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나. 그래서 다음 작품까지만 준비하고 있다"며 겸손함과 작품에 대한 열정을 동시에 드러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