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 이름은'을 연출한 정지영 감독이 40년 넘는 감독 인생 중 가장 고생한 작품이라고 회고했다. 제주 4·3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는 투자 유치가 어려워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되었으며, 과거의 폭력이 세습되는 메커니즘을 담아내고자 했다.
40년 이상 한국 영화계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정지영 감독이 신작 '내 이름은' 개봉을 앞두고 그간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15일 개봉하는 '내 이름은'은 18세 소년 영옥(신우빈 분)과 그의 어머니 정순(염혜란 분)의 이야기를 그리며, 이름 대신 과거의 아픔을 묻고 싶어 하는 인물들의 여정을 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제주 4·3사건의 비극이 드러나지만, 감독은 이를 직접적으로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한 시대의 아픔이 어떻게 개인의 삶에 스며들고 또 다른 폭력으로 이어지는지를 섬세하게 포착하고자 했다.
▲ 투자 난항 겪은 4·3사건 소재 영화 제작 과정
정지영 감독은 '내 이름은'이 감독으로서 경험한 제작 과정 중 가장 힘들었던 작품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영화는 제주 4·3 평화재단 공모전에서 당선된 각본을 기반으로 했으나, 4·3사건이라는 민감한 소재 때문에 투자를 받기 어려웠던 현실을 토로했다. 결국 감독은 함세웅 신부, 백낙청 교수 등 각계 원로들로 제작추진위원회를 꾸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자금 마련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난관과 아쉬움이 남았다고 언급하며, 충분한 제작비가 확보되었다면 더욱 감동적인 영화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라는 여운을 남겼다.
▲ 폭력의 세습과 중첩된 죄의식이라는 주제 구현
감독은 '내 이름은'의 각본을 여러 차례 수정하며 '이름을 찾는 소년'이라는 기본 아이디어와 인물 구조를 다듬었고, 그 과정에서 제주 4·3사건을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영화는 4·3사건을 정면으로 다루기보다, 사건이 공론화되기 시작한 1998년을 배경으로 아들과 엄마의 이야기를 통해 우회적으로 접근한다. 특히 영옥의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가 비중 있게 다뤄지며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을 보여준다. 이는 과거의 폭력이 단순히 멈추는 것이 아니라 세습되고, 집단 폭력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발생하는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더 나아가 정지영 감독은 등장인물들을 단순히 피해자로만 규정하지 않았다. 폭력의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로도 그려지는 인물들을 통해 실제 4·3사건 당시 복잡했던 관계와 상황을 반영하고자 했다. 감독은 "피해자지만 가해자 역할을 한 사람도 있고, 한 동네에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이 사는 경우도 있었다"며,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중첩된 죄의식을 영화에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는 국가 폭력의 희생자라는 점을 강조하며, 생존을 위해 행동해야 했던 이들의 복잡한 심리를 탐구하려는 시도였다.
영화 '내 이름은'은 정지영 감독의 작품 중 드물게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이기도 하다. 정순 역을 맡은 배우 염혜란은 전작 '소년들'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준 것을 계기로 이번 작품의 캐스팅으로 이어졌다. 정 감독은 염혜란 배우를 "한 시대를 주름잡을 천부적인 연기자"라고 칭찬하며, 한국 현대사의 아픈 역사를 거친 정순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고 평가했다. 여든에 가까운 나이에도 현역으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는 정 감독은 앞으로도 꾸준히 작품을 선보일 예정임을 밝혔다. 그는 다가올 미래에도 자신이 만들고 싶은 소재를 관객들이 계속 좋아해 줄지에 대한 고민을 안고 있지만, 차기작을 준비하며 멈추지 않는 창작열을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