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이나 사건의 뜻을 명백히 규정하는 '정의'는 복잡한 현대사 속에서도 본질을 파악하는 핵심 열쇠다. 제주 4·3 사건은 지난한 과정을 거쳐 도출된 정의를 통해 현대사의 대표적인 사건으로 규명되었다. 이러한 정의의 중요성은 짧은 글일수록 더욱 부각된다.
사물이나 사물의 뜻을 명백히 밝혀 규정하는 '정의'의 역할은 비단 학문적 탐구나 법률적 해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언론 보도를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글에서 정의는 사건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서게 하는 강력한 도구로 작용한다. 특히 글의 분량이 짧을수록 정의는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글의 설득력과 정보 전달력을 크게 좌우한다. 4월 2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내 이름은」 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서 정지영 감독과 배우들이 포즈를 취한 모습은, 이러한 정의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한다. 이 영화는 제주 4·3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되어, 사건의 복잡한 진실을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노력을 담고 있다.
▲ 정의의 중요성, 사건 본질 규명의 나침반
고위공직자 프로필 보도에서 '두주불사', '장악력', '원만한 성품', '합리적 성격' 등의 표현은 시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필수 정보인지, 혹은 인물을 옳게 정의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세계관이나 가치관까지 파악하지 못하더라도, 특정 자리에 있을 때 당대 핵심 사건, 쟁점 정책, 법·제도와 관련하여 어떤 선택, 판단, 결정을 내렸는지, 나아가 주요 역사와 사회 현안에 대해 어떤 식견과 정견을 가졌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프로필 보도의 마땅한 역할이다. 이러한 정보야말로 인물을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하는 데 필수적인 '정의'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 제주 4·3 사건, 정의를 통해 밝혀진 역사
제주 4·3 사건은 복잡하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 '정의'가 도출된 현대사 대표 사례 중 하나다.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는 이 사건을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 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독선거)·단정(단독정부)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 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 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정의한다. 이 방대한 정의는 사건의 발생 시점, 주요 세력, 대립 양상, 그리고 비극적인 결과를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
▲ 정의의 다양한 해석과 핵심 쟁점
물론, 제주 4·3 사건에 대한 정의는 다양한 형태로 제시될 수 있으며, 각 정의는 사건의 특정 측면을 강조한다. 보고서 536쪽에 명시된 긴 정의 외에도,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 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그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2조)과 같은 보다 간결한 정의도 존재한다. 또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남로당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다수의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정의들은 사건의 복잡성을 드러내지만, 핵심적으로는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그 과정에서의 주민 희생이라는 비극적 역사를 공유한다. 4월 3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8주년 제주4·3희생자추념식에서 참석자들이 분향·헌화하는 모습은, 이러한 역사적 진실 규명과 희생자 추모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기사의 핵심은 '정의'라는 단어의 다층적인 의미와 그 중요성을 부각하는 데 있다. 특히 제주 4·3 사건을 사례로 들어, 복잡한 역사적 사건을 명확히 규정하는 과정의 의미와 그 결과물을 제시한다.
정의로운 길, 본질 탐구의 시작.











